실망은 잠시동안만

대단한 날이었다. 남편의 마지막 아이엘츠 점수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못 나왔고 내 첫 번째 번역 숙제는 공개적으로 수업 시간에 첨삭이 됐다. 우선 아침부터 얘기해볼까. 점수가 나오는 9시가 다가오는 걸 보면서 나는 속으로 긴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6.5가 나오면 좋겠다. 안 나오면 어떡하지 이런 류의 생각이 시계추 오고가듯 포물선을 그리며 반복됐다. 드디어 시간은 다가왔고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보. 있잖아. 점수가.... 더 떨어져서 나왔네?" 엥? 엥??? 이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답안지인데? 기존에 받은 점수보다 더 떨어졌다고?

시무룩해진 남편을 수화기 너머로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를 전했다. 아쉬운 마음을 애써 접고 통화를 끊고 생각했다. 인생이 뜻하는대로 풀리지 않기도 하구나, 하고. 내 뜻대로 안 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내가 발버둥친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으니. 일단은 이 생각 (정확히 말하면 서운한 감정)을 접고 오전 근무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준비 시간이 너무 짧았다.

두시가 되어 두 번째 번역 수업을 들으러 자리를 이동했다. 지난 주에 내준 과제도 카페에 업로드 했고 오늘은 또 무엇을 배울까 약간 들뜨기도 했다. 강의실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아 무심코 책상 위에 놓여있는 유인물을 보았는데. 세상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바로 내가 한 번역 과제물이 프린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주에 한 명씩 돌아가며 과제한 것을 수업시간에 같이 보겠다고 강사님이 말했던 것 같긴 하다. 문제는 내가 첫번째 타자가 될 줄 상상도 못했다는 거다. 정말이지 수업 장장 두 시간에 걸쳐 한문장 한문장씩 내 번역의 옳고 그름을 분석했다. 단어 하나까지 모두 파해쳤다. 나는 군살붙은 통통한 몸으로 비키니라도 입고 사막에 서 있는 화끈거림을 느꼈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내 번역본을 보고 있는 듯 했다. (휴) 기분이 이상했다. 번역가가 내 번역을 한줄 한줄 보면서 평가를 해주다니. 내 실수를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고나 할까?

얼떨결에 두 시간 내내 분석을 받고 어리버리하며 건물 밖을 나왔다. 오늘 내가 분석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열심히 번역할 걸. 잘 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신기한 경험이다. 초반에 각성 수준이 높아졌으니 후반부 번역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겠지.

다시 남편의 영어 점수로 돌아와서. 우리는 일단 두 가지 액션을 했다. 첫 번째는 코펜하겐 대학교에 문의해보는 것이다. 6.0을 맞았지만 입학할 수 있냐고. 영어 수업같은 것을 들어서 부족한 점수를 보충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두 번째는 네덜란드 와게닝언 대학교에 문의하는 것이다. 신입생은 5월 1일까지 뽑아서 이미 기한이 한달이나 지났지만 "혹시" 지금 지원이 가능한지 말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두드릴 수 있는 문이었다. 이 두곳은.

두 대학에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 편하게 있기로 했다. 초조해 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고민은 두 학교가 할 일이다. 만약 모두 부정적인 답변을 준다면 그때 또 문을 찾고 두드리면 된다. 찾는 자에게 문은 보이기 마련이고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린다. 우리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문을 찾고 두드리기로 했다. 문이 마침내 열리고 세계가 좀 더 넓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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