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뭐라고

유리공예가인 마리는 "인간은 생산적이어선 안 돼. 쓰레기나 만들 뿐이니까"라고 말했다. 본인은 실로 아름다운 유리공예품을 만들면서도 이런 말을 한다. "난 불가연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거야." 자각있는 예술가는 훌륭하다.

- <사는게 뭐라고>, 사노 요코

이 할머니 마음에 든다. 가장 절망적이고 외로운 상황에서도 해학은 피어오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 작가의 글은 덤덤해서 더 와닿는다. 하나 둘씩 잊어버리는 자신의 치매를 발견하고 '있는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친구와 통화를 하면 '이것도 까먹었고 저것도 이젠 기억이 안 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해탈의 경지이다. 내 나이 스물 아홉인데 60대, 70대의 나를 그려본다는 건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때의 나는 어느 부분이 얼마만큼 망가져 있을지 상상한다니 왠일인지 (절대) 그려지지가 않는다.

<사는게 뭐라고>. 나는 이 책의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사는게 별 거 아니라는 작가의 철학이 좋다. '별거 없으니 이래저래 해서 어떤 사람이 되어라'고 무지막지하게 뭘 보여주려고 달려들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 책은 '사는거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일상 관찰이다. 재미있다. 작가가 관찰하는 소소한 일상이 웃음 나오게 한다.

나도 이렇게 글을 재미있게 또 솔직하게 쓰면 참 좋겠다. 책을 읽은 또 하나의 재미는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에서 온다. 작가는 보고 들은 것을 쓴 것 뿐인데 뭐가 이렇게 재미있지? 딱히 주변 사람들이 유별나게 웃긴 것도 아니다. 사람 사는게 다 비슷비슷 할텐데 이 사람의 얘기는 이렇게도 해학적인 스토리가 있는 걸까.

작가는 <죽는게 뭐라고>라는 책도 냈다. 사는게 뭔지 보고 그것도 빌려 볼까 한다. 글쓴다는 핑계로 <사는게 뭐라고>책을 뒤적거리면서 키득대며 빈둥대다가 벌써 10시 반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번역 숙제에 한시간 반이나 써버리는 바람에 저녁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글은 여기까지만 쓰고 가서 요코 할머니 이야기나 좀 더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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