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겨울나기 대비, 이케아를 다녀왔습니다

새 집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 밝아오자마자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망했다. 엄청나게 춥다. 전날 밤 느닷없이 닥쳐온 가을 추위를 충분히 예상하고 두툼한 수면바지와 조끼로 무장을 하고 잤지만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9월 1일의 아침이 밝았다. 너무나도 낯설은 찬공기와 함께. 이건 가을 공기가 아니다.

기지개를 켜볼까 해서 졸린 눈을 비비며 발코니로 나갔다. 시원하게 스트레칭을 하려고 팔을 뻗고 공기를 들이마시니 느껴진다. 바깥공기가 안방 공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물론 과장이다.) 독일에 와서 처음 겪어보는 추위였다. 어떻게 이렇게 내내 덥기만 하다가 이사를 오자마자 추워질 수 있을까? 정말 신기하다.

9월부터 넉넉잡아 내년 3월까지 춥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이불도 따로 보내지 않았었다. 당장 급한건 두툼한 이불. 추위가 이토록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추위를 대비해본 기억은 없다. 여기에선 차원이 다를 것 같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이 많을 것 같아 이케아를 가보기로 했다. 집에서는 열차를 타고 1시간 떨어진 거리다. 열차가 빨라서 그렇지 꽤 먼 거리다. 우리는 거의 여행떠나는 기분으로 가방을 쌌다. 마실 물과 간단한 간식을 가방에 넣었다. 

장난 아니게 넓다. 각오하고 와야한다.

이케아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뭐 한국 이케아도 못지 않게 넓긴 하지만, 북유럽에 가까워졌으니 여기 이케아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사람들이 들어가는 입구로 우리도 슬그머니 들어가보니 과연 넓다. 쇼룸을 구경하다가 2시간이나 훌쩍 지나버렸다.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느라 혼이 쏙 빠져버릴 때쯤 고소하고 맛 좋은 냄새가 났다. 레스토랑이다. 어쩜 이렇게 동선을 잘 짜뒀는지. 이케아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기발한 마케팅에 감탄했다.

우리의 오늘 목표는 겨울나기용 이불을 장만하는 일이었는데 이것저것 구경하고 허기 채우느라 벌써 3시간이 가버린 것 같다. 거의 탈진할 때 쯤 이불코너에 도착했고, 아직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우리는 한참을 만져보고 둘러본 뒤에야 겨우 "가장 두꺼운" 솜이불을 찾을 수 있었다. 더운 정도를 나타내는 빨간 동그라미가 2개나 있는 걸로 봐서 extra warm을 뜻하는 것 같다. 제발 따뜻했으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솜을 골랐다.

가장 "두꺼워 보이는" 이불... 따뜻해라 따뜻해라 따뜻해져라!

커버도 골라야 한다. 종류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한두푼도 아니고 몇해동안 겨울을 날텐데 아무거나 고를 수는 없었다. 하나하나 만져보고 이걸 덮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느라 이만저만 시간이 오래 걸린게 아니였다. 지금 와서 이불을 덮어보니 뭐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다고 고민했나 싶다. 뭘 선택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독일 베개는 정말 독특하다. 정사각형 모양의 흐물흐물한 쿠션같은걸 베고 잔다고 한다. 베고 누으면 베개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납짝한데. 독일 베개는 영 시원찮다. 

간 김에 수건이나 수납함, 옷걸이, 공병, 향초같은 것들을 같이 샀다. 저렴한 것들로만 고른다고 골랐는데 벌써 300유로를 넘겼다. 돈 쓰기 참 쉽다. 아직 이걸로 겨울나기 준비는 끝난게 아닌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내복과 전기장판, 그리고 두껍디 두꺼운 잠옷이 더 필요하다. 이중 삼중으로 껴입어야 한다. 추위는 강렬하고 길고 길테니까.

가방에 꾸역꾸역 넣고 양 팔에 바리바리 껴서 가져오기. 우린 차가 없다. :)

이케아에서 산 정리기구로 한결 깔끔해진 주방.

너무 오래 싸돌아다녔더니 발바닥이 저릿저릿하다. 이케아는 너무 컸다. 하지만 우리는 부피가 큰 것들은 사오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더 가야 할 것 같다. 9월은 집을 더 집 답게. 다가올 추위를 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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