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지낼 새 집으로 이사하기

독일에서 이사하기, 지하철타고!!

이사를 끝냈다. 앞으로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할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아닌 타인의 취향인 책상에 앉아 타인 취향의 컵으로 차 한잔을 마신다. 남의 집에 놀러온 것 같은 낯설음이 느껴진다. 걸레질 한번 훔치면서 낯선 사물과 친숙해지려고 해본다. 아직은 하루 반나절만큼만 가까울 뿐이다.

갑자기 두 사람이 지내기에 공간이 엄청나게 커져버렸다. 당황스럽다. 거실에서 부엌 개수대까지 열 세걸음, 다시 부엌에서 화장실까지 열 두걸음. 집 안에서 걷기만 해도 운동이 되는 것 같은 느낌.

집은 예전 세입자가 놓고 간 온갖 잡동사니와 허름한 가구로 채워져있었다. 우리가 오늘 가져온 캐리어는 4개였는데, 너무나도 쉽게 집 안에 흡수되어 버렸다. 한국에서 나름 "중요한 옷과 잡동사니"로 분류된 것들을 28인치 캐리어 2개, 21인치 캐리어 2개에 꽉꽉 눌러 담아왔는데, 너무나 허무하게도 장롱과 서랍 안에 스며들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낑낑대며 가져왔던 온갖 것들이 사실 별거 없어보이는 순간이었다. 집은 물건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28인치 캐리어 2개, 21인치 캐리어 2개, 각자 배낭과 보조가방.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아직은 다 낯설다

거실 벽이 너무 휑하니 낯설다. 넓은 벽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 지나치게 휑해서 보기가 안쓰러울 지경이다. 저기에 뭘 채우면 좋을까. 영감을 주는 글귀나 화사한 무늬가 프린트 된 천을 붙이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은 어디선가 모아온 슈투트가르트 지도를 한 장씩 펼치고서는 말한다. "이 지도 몇 개 이어 붙이면 이상할까?" 동의를 구하는 듯한 남편의 물음에 나는 그냥, "여보는 지도를 참 좋아하는 구나"라는 애매한 말로 답해버렸다. 벽도 넓은데 둘이 좋아하는 거 하나씩 붙이지 뭐. 

집에서 신발을 신는 게 어색하다. 슬리퍼를 신기로 했다. 바닥 쓸기와 닦기는 차차 할 생각이다. 집이 넓어서 청소하는 것도 수일 걸릴 듯 하다. 사실 청소 부터 모든 일의 시작이다. 집에 정을 들이는 것도. 손길이 가고 구슬땀을 흘려야 애정도 생기니까.

짐을 줄인 게 고작 몇 주도 안 됐는데, 나는 새집에 들어와 물건 살 궁리부터 하고 있다. 슬리퍼부터 행주, 이불부터 문구류까지 필요한게 넘쳐난다. 버리고 사고 버리고 사고.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지. 한숨을 쉬면서도 스피커는 뭘 사야할지, 기타는 어떻게 할건지, 키보드가 있으면 더 좋겠다는 이런 불경한 생각이 이어진다. (휴..) 이러면 신혼살림 장만하는 거랑 뭐가 다르지.


내가 좋아하는 공간 만들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창문을 바라보는 책상

우리 부부가 새 집에 들어오고 가장 신경썼던 공간은 거실, 그리고 책상이다. 우리가 처음 눈맞았던 곳이 도서관이라서 그런가? (남편과 나는 도서관 자리를 맡아주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공부하면서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난 남편과 나란히 책상 앞에 앉아 뭔가 하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연애기간 내내 뻔질나게 카페를 드나들었던 건지도. 캄보디아에서 어쩌다 주말에 갈 카페를 정할 때는 '노트북을 올려두고 작업하기 편한 책상과 의자가 있는지'가 1순위였다. 그만큼 우리에게 책상, 의자는 중요하다.

새 집 거실에 다행히 커다란 책상이 있었다. 우리는 오자마자 이 책상부터 닦고 볕이 잘 드는 창가 쪽으로 이동시켜놨다. 책상이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니!!!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나의 오래된 로망이 충족된 순간이다. (크.. 감동적이야.) 게다가 두 사람이 쓰기에 넓이도 넉넉하다. 이 자리에 우리는 매일 앉아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공부를 할 것이다. 이 작업 공간은 무척 마음에 든다. 지금도 여기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창문 너머로 희미한 가로수 빛이 별자리처럼 수 놓아있다.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어슴푸레한 첫 번째 저녁. 독일의 조명은 한국처럼 밝지 않고 야리꾸리한 붉은 빛이다. 이 빛부터 적응해야겠다. 살다보면 이것도 적응되겠지. 적응할게 산더미지만. 여기에서 잘 견뎌보자. My home, sweet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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