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생후 2주간의 모유수유 전투기

하니 생후 +10일

하니는 여전히 잘 자고 있다. 오전에 수유를 하고 침대에 눕혔는데 무엇이 불편했는지 왕- 하고 운다. 나는 그게 못내 기뻐서 조금은 두고 관찰해보았다. 가만히 둬도 찡얼거림이 가라앉지 않아 무엇이 불편한 건지 살짝 걱정이 들었다. 얼른 안아 토닥이고 가슴 위에 올려두니 울음이 멈췄다. 조용히 침대에 내려놨는데 다시 칭얼댄다. 다시 가슴 위에 올려두고 달랬다.

하니는 자주 자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오늘로 생후 10일이 되었는데 하루 24시간 중 족히 20시간은 넘게 잠만 잔다. 수유는 사실 따지고보면 6-8시간을 하는데, 수유 중엔 거의 자는 편이다. 깨우려고 매번 발바닥을 만지고 몸을 간지럽히느라 애를 먹고 있다.

어제부터 유축기를 쓰는 중이다. 직수로 한쪽 가슴당 10분씩 먼저 가슴을 물리고 20분간 유축을 해서 가슴에 자극을 주는 중이다. 아기는 힘이 없어 오랜 시간 빨지를 못하기 때문에 가슴을 자극시켜주는 일을 아기 대신 이 기계가 해주고 있다. 내 가슴은 아주 빈약해서 아직도 두쪽 가슴을 모아 모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아 모아 20ml 밖에 추가로 내놓질 못하고 있다. 아기가 직수로 얼마를 먹는지 알 수 없으니 도대체 아기가 잘 먹긴 한 건지 충분한 건지 의심이 크다.

헤바메는 오늘 아침 방문에서 당장 오늘 저녁이라도 30ml, 40ml로 유축량이 늘어날 수 있을 거라며 희색을 보였지만 직수가 끝나고 유축할 때 나는 정말 개미눈물을 모으는 기분이다. 20ml를 벗어나지 못한다.

개미눈물 모아모아 짜고 짠 유축...

 


+11일

벌써 세 번째 나타나는 증상이다. 어느순간 눈이 뿌옇게 되고 시야가 좁아진다. 오른쪽 눈, 왼쪽 눈 모두 같은 반응이다. 보고자 하는 물체 주변으로 C자 모양으로 무언가가 번쩍번쩍거리고 그 부분의 물체가 완전히 뭉개져 보인다. 첫 번째로 이 증상이 나타났을 때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남편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이렇게 영원히 안 보이면 어떡할까. 멀리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왼쪽 눈부터 왼편이 흐릿흐릿. 보이지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는 경험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눈에 대해서 나는 가족력이 있기 때문에 아주 민감한 편이다. 흐릿흐릿하던 눈은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유가 뭘까. 피를 너무 많이 잃어 빈혈 수치가 낮아 이러는 걸까. 당이 떨어져서 잠시 머리가 헷가닥 한 걸까. 또 이렇게 되면 어떡할까. 영원히 이렇게 잘 안 보이면 어떡할까.

이 공포는 작지만 나를, 나의 영혼을 잠식시키기에 충분히 컸다. 오늘 오전 수유를 앞두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또 다시 증상이 나타났다. 첫 번째만큼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몸이 바짝 긴장하게 된다. 괜찮을 거야. 일시적인 걸 거야. 내일도 이 증상이 나타나면 그땐 꼭 안과 진료 예약을 잡아야지. 요즘 매일 아침 집을 방문해주고 있는 헤바메는 나의 이런 증상이 피를 너무 많이 잃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거라며 푹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나도 괜찮을 거라고 믿어본다. 시력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지금 보는 만큼 내 사랑하는 남편의, 하니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행복과 기쁨은 없을 것 같다.

요즘 나의 기도는 이렇다. 남편과 하니의 얼굴을 계속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시력을 잘 보존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얼른 건강하게 몸을 회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무것도 아닌 부분이 때론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부분이다.

 


 +12일

트림을 시키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써버렸다. 여러 자세로 바꿔봐도 속 시원한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남편은 하니가 걱정되어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한 시간을 끙끙대더니 기저귀를 갈고 눕혔다. 이렇게 한 시간이 가버리는 바람에 다음 수유까지 다시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수유 텀은 정말이지 너무 일찍 돌아온다. 20분간 먼저 젖을 먹이고 남편에게 하니를 주면 남편이 앞전에 유축해놓은 젖과 분유를 먹이는 동안 나는 다시 20분간 유축을 한다. 기저귀도 갈고 잠도 깨우도 트림도 시키다 보면 이렇게 대충 1시간이 간다. 그런 후에 아기가 곧장 잠들면 다음 텀까지 2시간이 있는 거지만 요즘은 자주 칭얼거리는 탓에 1시간 반으로 줄어들고 있다. 새벽에 아기가 잠에 잘 들지 않으면 더욱 난감하다. 잠을 못 자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처음 일주일은 아이에게 미소를 보이거나 다정하게 말을 걸거나 하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들였던 것 같은데, 밤중수유를 할 때 나는 '빨리 먹고 자자'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젖을 물리고 나면 시계를 쳐다보고 방 안을 둘러보고 중간중간 아기를 깨운다. 시간이 잘 가지 않는 것 같아 시계를 몇 번이고 다시 쳐다본다.

날씨까지 우중충하다. 이번 주말과 다음주 월요일까지는 계속 흐림이다. 벌써 밖에 나가지 않은지도 10일째가 되었다. 산책을 한번 나가고 싶긴 한데 수유 텀은 너무 일찍 돌아오고 날씨는 협조적이지 않다... 이런.

 


+14일

집에 방문객들이 와주었다. 답답한 일상에 시원한 생수 같은 존재들이다. 한바탕 수다를 떨었더니 신이 나기도 하고 에너지도 생겼다.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니가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어주었다. 그것마저 따스한 위로로 전달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4월, 나의 가장 큰 고민과 염려는 두 가지고 좁혀진다. 하니가 자느라 모유를 잘 먹지 않는다는 점과 내 눈이 많이 안 좋아 졌다는 점. 그것 외에는 사실 큰 걱정은 없다. 빨리 직수만 하면 좋겠다는 것은 내 바람이다. 수유하고 젖병 만들어 분유 먹이고 유축하고 트림시키고... 이 모든 걸 하루에 7-8번은 하려니까 힘이 든다. 직수만 하면 좋을 텐데... 이제 하니는 2주가 되었으니 남들 조리원에 들어갔다 나오는 시기와 같다. 한 달 정도는 모유수유가 자리 잡히도록 지켜보아야 하니까, 이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눈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어쨌든 안과 예약을 잡아두었는데 집 근처로 두 군데 전화를 해보았지만 모두 5주, 6주 뒤에 예약을 잡아주었다. 무턱대고 큰 병원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다. 지난 번에 유산 건으로 대형병원에 갔다가 동네 산부인과의 소견서를 가져오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동네 병원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아기가 있으니 어디 나가는 것도, 무얼 하는 것도 다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쓰는 동안 아기는 아기 소리를 내고 있는 중이다. 낑낑거리는게 정말 귀엽다. 요즘 우리 부부는 굉장히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한편으로 아기 덕분에 정말 꾸밈없이 많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하니가 잠을 많이 자주고 있기 때문에 가끔 우리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챙겨 보면서 예전 홀몸 시절처럼 시간을 만끽하기도 한다. 아기가 계속 깨어 있으면 우리 시간이 그만큼 없어지는 것이기에 그땐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잠을 잘 자던 아기가 왕- 하고 울고 있다.

 


+16일

모유수유로만 해보고자 어제는 유축도 안하고 분유도 안 주고 하루를 보내보았다. 내 느낌상으로 하니가 꽤 잘 먹고 있고 또 그렇게 힘들어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 이대로만 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직수로만 가슴을 물리면 일이 절반으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매번 유축하고 젖병과 깔때기를 안 씻어도 되지, 젖병 소독 안 해도 되지, 트림 무리하게 안 시켜도 되지.. 이제 하루에도 족히 7-8번은 반복해야 되는 일이라 모아놓고 보면 상당하다. 30분씩 8번은 240분 = 4시간... 어젠 그래서 굉장히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하니가 배고프다고 찡얼 대면 가슴만 물리면 되니까. 남편의 일도 크게 덜어 오랜만에 남편은 통잠을 잘 수 있었다.

삶고 씻고의 반복이다

이런 시스템으로 계속 가려면 하니가 오늘 몸무게가 올랐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헤바메 방문 때 몸무게가 감소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헤바메는 입을 삐죽하고 오므리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렇게 몸무게가 줄면 안된다고. 하루만 더 시도해보고 내일 다시 몸무게를 점검해보자고 했지만 헤바메는 집을 떠나고 한참 뒤에 내게 문자를 보냈다. 다시 예전처럼 직수 후에 유축하고 분유 보충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그새 젖양이 줄었는지 수유 후에 유축을 하는데 개미 눈물만큼 젖이 모아졌다. 유축이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다. 나는 헤바메의 도움으로 소아과에서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빌린 유축기를 쓰고 있다. 양쪽 가슴을 동시에 유축할 수 있는 Medela Symphony를 쓰고 있는데 양 손을 20분간 결박시켜야 해서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다. 양 손으로 양 쪽 가슴과 연결된 젖병을 잡고 있어야 하는데 손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가슴은 또 어떻고.. 유축기가 빨아들이는 압력이 상당하다. 아픈 것도 서럽고 젖양도 개미눈물만큼 나와서 아까 유축할 때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너무 유축이 하기 싫어 으앙-하고 아기같이 펑펑 울고 말았다. 유축을 해야 젖양이 느는 걸 아는데도. 가슴이 너무 아프고 자세도 불편하고 젖은 너무 조금 나와서 단순히 그것 때문에 눈물이 펑펑 나버렸다. 아기 트림을 시키고 있던 남편은 순간 당황해서 아기를 안고 내 옆으로 왔다. 나는 눈물을 닦고 10분 만에 유축을 관두었다. 잠시 남편에게 안겨 있었다.

모유수유가 언제쯤 안정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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