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생후 8주~10주의 기록

하니 생후 +54일

글을 매일 쓰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 육아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아기 주변에만 주로 있는 편이다.

하니가 7주쯤 넘어가기 시작할 때부터 이제 모유수유에 대한 어려움은 줄었고 아기와 먹고 놀고 재우고의 반복이 꽤 규칙적이게 되었다. 첫 한 달간 하니는 워낙 많이 잤던 터라 규칙이란 것이 따로 없었는데 이제는 수유 후에 조금씩 재워보고 있다.

아직 패턴같은 게 생긴 건 아니지만 오전에 두 번, 오후에 두세 번 낮잠을 자고 저녁 6시가 되면 나름 밤잠이라 생각하고 아기를 본격적으로 재워보려고 하는 편이다.

하니는 다행히 밤에 잠을 잘 잔다. 배가 고플 때만 칭얼거리고 수유가 끝나면 다시 잠에 든다. 한번 잘 때 4시간 넘게까지 자고 있어서 덕분에 나도 4시간까지 통잠을 자본 적도 있다. 4시간이라니! 1시간마다 깼던 적을 생각해보면 그때에 비해 지금 너무 편하다. 며칠 전 하니가 저녁 7시부터 밤잠처럼 4시간을 쭉 자다가 11시에 깬 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고요한 저녁시간을 보내게 되어 참 감사했다. 

큰 문제없이 순탄하게 아기가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만족감이 크다. 이 모든 게 전적으로 하니가 순해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아 어쩔 땐 로또를 맞은 기분이다. 가끔 이게 생시인가.. 현실이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어려움이 클 것이라 기대(?)나 염려를 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행복감과 충족감이 클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는 가늠이 되지 않지만 하니와 함께한 이 두 달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58일

독일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해볼 생각이다. 어차피 하니는 계속 크고 나는 하니 곁에 있을 거고 하니는 적어도 낮잠과 밤잠을 잘 자니까. 독일어 단어를 외우는 것으로 슬슬 시동을 걸었다. 매일 이것저것 시도를 하다보면 어느 정도 공부 패턴이 잡히는 날도 올 것이다. 지금은 10분 단어 봤다가 아기가 울면 가서 달랬다가 한~참 뒤에 조금 들여다 봤다가 이러고 있다. 

하니가 태어나고 6주정도 되니 상대방을 향해 웃어주기 시작했다. 약간 체력적으로 힘이 들다가도 아기가 빙긋이 웃어주면 힘든 게 금방 사라진다. 요즘엔 옹알이 같은 것도 늘었다. 얻어걸리는 거겠지만 내가 말할 때 하니가 꿱! 앗ㅆ! 이런 반응을 해주면 나도 신이 난다. 우리는 같이 자라고 있다.

 

+59일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기온은 차고 날씨는 스산하다. 하니는 졸릴랑말랑 잠들 것 같아 수유쿠션에서 아기 침대로 내려놓았는데 바닥에 등이 닿기도 전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준비를 다 해버렸다. 나는 모른 척 침대에서 기어 나와 책상에 앉았다. 하니는 버둥버둥 끙끙대면서 가끔 우에에웅! 같은 아기 소리를 내는 중이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다시 잠에 들지 않을까 모른 척하고 있다.

이제 하니 생후 60일에 가까워졌고 모유수유로만 하니를 키운지도 3주쯤 됐는데 그 사이 (많이는 아니지만) 살도 조금 올랐다. 이 정도면 어느정도 모유수유도 궤도에 올랐다고 보이지만 여전히 불안할 때가 있다. 그놈의 평균이 뭔지. 평균보다 살짝 미달인 몸무게가 영 신경이 쓰인다. 옛날 말로 참젖, 물젖이 있다던데 아기를 포동포동하게 살찌우지 못하는 내 모유는 물젖이란 말인가. 괜한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다. 어쨌든 지금까지 잘 오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식으로 내 몸을 믿고 누군가의 밥줄 (그것도 내 새끼의) 생명줄이 되어본 적은 처음이라 책임이 꽤 막중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하니가 잘 못 먹거나 먹다가 울거나 하면 굉장히 큰 일처럼 느껴져서 호들갑을 떨 수 밖에 없다. 내 모유가 부족한 걸까, 하니가 지금 속이 불편한 걸까, 졸린 걸까, 나중에 먹여야 할까.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그야말로 아기 밥 먹이는 일에 내 모든 사활이 걸려있다.

엄마의 시간을 녹여부어 아기가 큰다던데 지금 내가 그렇게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꼴이다. 새벽에도 아기가 칭얼대면 즉시 일어나 젖을 물린다. 그렇게 잠이 많은 내가! 신기한 일이다. 임신 후기로 접어들면서 그렇게 새벽에 한 번씩 깨더니 육아를 연습하라는 몸의 준비였을지 모르겠다. 일어나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고 눈 맞춤을 하고 이름을 불러주고.. 아기를 재우고.. 그렇게 느릿느릿 나의 시간은 아기에 초점을 맞춘 채로 흘러간다.

이 안에서도 나의 개인시간을 찾아 임신 전과 같은 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대단한 것은 못하지만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시내 구경을 나간다거나 서점에 간다거나 아기가 낮잠을 자면 글을 쓴다거나 책을 읽고 단어를 외우기도 한다. 하니가 태어나고 나도 몸이 회복되지 않았을 때는 이런 것들이 무척이나 어려웠는데 어느새 예전 나의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는 걸 보니 몸도 마음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듯하다.

누군가의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는 것. 내가 하는 이 일이 한 존재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 꽤 근사하고 멋진 일이다.

지금까지 육아생활, 매일 맑음은 아니지만 대체로 맑음! :)

 

+65일

체중계에 올라가 보고선 깜짝 놀라버렸다. 왜!! 살이 잘 안빠질까? 이제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무려 두 달간이나 정체되어 있던 몸무게에서 최근에 뭘 먹었는지 2킬로나 쪄버렸다. 허벅지도 퉁퉁하고 몸이 무거워졌다. 하니가 백일이 되기 전, 3개월 안에 예전 몸무게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노력 없이는 결코 이뤄지지 않을 목표였나 보다. 이제 한 달 남았으니 늦지 않았다. 가볍게 먹고 많이 걸어야겠다.

하니는 여전히 순하고 착한 아이로 잘 크고 있다. 하니가 너무 순하고 문제없이 커서 이렇게 순탄해도 되는 걸까 의심이 갈 정도이다. 지난주부터는 저녁 6시부터 밤잠을 재우고 있는데 토 달지 않고(?) 평온하게 잠에 들어주고 있어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 외출이 길었던 날에는 유난히 찡찡대는 것이 길어지지만 그것도 두어 시간이다.

6시면 염불 외듯 자장자장 반복되는 내 노랫소리에 속싸개에 단단히 쌓인 채로 멀뚱멀뚱 모빌을 보다가, 한 번씩 잉잉- 소리를 냈다가, 대개는 7시쯤 잠에 든다. 어떤 날은 그대로 5시간을 내리 잔 적도 있어서 깜짝 놀랐다. 어떤 날은 2시간 후에 깨서 수유하기도 한다. 매일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저녁 6-7시쯤이면 밤잠에 들어간다는 전체적인 방향은 쭉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를 재워두고 우리는 예전처럼 저녁밥도 해 먹고 예능 프로그램도 보고 쉬기도 하며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런 저녁이 있는 삶은 아주 오랜만이라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오늘 저녁엔 온 집안 대청소를 했다. 드디어 거실과 안방을 분리시켰다. 하니가 추울까봐, 다른 방에 비해 비교적 따뜻한 거실만 원룸처럼 사용하며 산후조리 기간을 버텼다. 드디어 우리 침대와 아기침대, 아기 서랍장을 안방으로 옮겼다. 넓어진 거실에서 그동안 아기가 깰까 봐 엄두도 못 냈던,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호화로운 개인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런 날도 오는 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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