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떼 도돌이표 안에서 기적을 외치다

언제부터인가 하니는 어딘가 고장 난 아이처럼 생떼를 쓰고 울기 시작했다. 한국에 오고 친정에 잠시 얹혀살면서 생떼가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그 시기는 27개월 즈음인 것 같다.

'엄마한테 갈래', '엄마 안아줘', '엄마랑 목욕할래' 같이 주로 그때의 상황마다 안 되는 것들을 요구하곤 한다. 내가 로이를 안고 있을 때 자기를 안아 달라고 하거나, 맥락과 관계없이 그야말로 목적 없이 떼를 늘어놓기도 한다.

방금도 목욕하기 전 하니의 기분을 맞춰주는 중이었는데 정작 목욕할 시간이 되니 안아 달라고 떼를 쓰다가, 그게 먹히지 않으니 엄마랑 목욕한다고 말을 바꿨다가, 로이를 안고 화장실까지 같이 들어가니 이젠 엄마 여기(욕조 옆) 있으라며 운다.

요구를 들어줘도 이유를 바꿔가며 울음을 멈추지 않는 걸 보니 해결되지 않는 슬픈 욕구가 하니의 마음 저 밑에 깔려있는 듯하다. 둘째가 태어나고 사랑과 관심을 나눠 갖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마음이 저려온다.

 


 

아이가 목 놓아 우는 꼴을 견디기는 정말로 어렵다.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커다란 목청으로 울부짖는 것을 한 두 번이라도 듣다 보면, '왜 울어', '울지마', '엄마가 어떻게 해줄까'와 같은 불필요한 사설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곧장 밖으로 튀어나갈 듯 간지럽다.

나와 남편은 요즘 오은영 박사님의 유튜브 강의를 주기적으로 반복해 들으며, 화를 내지 말자, 부모로서 마땅히 견디고 인내하자, 아이의 어려움을 이해하자며 노력하고 있지만  막상 부딪히는 실전 앞에서는 매번 망연자실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다.

 


 

아이의 울음을 들으며 감정을 자제하는 그 순간 만큼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느리게 흐른다.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울음도 참고 기다리다 보니 어느 순간 잦아드는 것을 (몇 번 안되지만) 경험한 이후부터는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뢰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아직도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목욕을 하기 전 나를 붙잡고 떼쓰며 목청껏 울던 하니는 내가 화장실을 나가고 난 후 의외로 아빠와 즐겁게 목욕을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밖으로 나왔다...가 얼마 안 가 블록 쌓기 놀이를 하겠다고(그냥 하면 될 텐데) 울고 있다.

하니를 안아 달래주고 싶고 하니만 집중해주고 싶은데도 둘째는 둘째 나름대로 울 이유를 찾아 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월등히(?) 연약한 둘째 쪽으로 몸과 마음이 저절로 기울어져, 나는 나 나름대로 하니에게 매일 미안한 심정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쯤 되니 그동안 유튜브를 하며 숱하게 많이 받아왔던 질문(혹은 탄식) "어떻게 저렇게 (하니가) 엄마가 찬양할 동안 얌전하게 있을 수 있냐"를 나 스스로도 과거의 나에게 묻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그 모든 걸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건 살면서 움켜쥐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로 자꾸만 빠져나가는 찰나의 순간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아주 잠시 동안 사명을 갖고 기적처럼 우리 곁에 머무른 것일지 모르겠다.

지금은 둘째가 생겼으니 '(애) 하나가 아무렴 쉬웠다'고 말하기엔 매일 고군분투 했던 그때 그 시절의 나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생떼의 굴레에 갇혀 살며 눈치껏 둘째 육아를 하는 지금도 매일이 전쟁이지만, 낯선 땅에서 남편과 단둘이 육아를 한 그때도 지금만큼 힘들었다. 과거는 늘 항상 미화되는 경향이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다.

그때 우리가 카메라에 담았던 기적같이 아름다운 순간들은 현실에 찌든 지금도, 사실은 매일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고. 아름다운 순간은 늘 함께 있으니 힘을 내자. 매일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적의 순간이니까..

'2021년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엔 수족구  (8) 2021.11.10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에 잠못드는 밤  (2) 2021.11.07
두 번째 출산  (3) 2021.07.05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