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에 잠못드는 밤

냉장고 두대가 시끄럽게 웅웅 거린다. 좁디 좁은 병실 베드에 몸을 구겨넣어 하니 옆에 누웠다. 함께 누운지 두 시간이 다 되도록 하니는 잠들지 않았다. 웅웅거리는 냉장고 소리가 너무 커서인지, 잠들 기색이 전혀 없는 하니 때문인지, 나는 숨막히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여길 나가고 싶어졌다. 24시간 병실에 갖혀있었다. 하니를 계속 보는게 힘들다. 로이와 격리를 위해 입원을 결정한 것이 잘못 되었다고 느껴졌다.

로이가 급성폐렴으로 일주일을 입원하고 퇴원한지 3일만에 하니가 수족구로 다시 입원했다. 하필이면 병실도 로이가 썼던 516호 그대로다. 시끄러운 냉장고 소리가 거슬려 잠들기가 힘들었던 그 병실이다. 너무나도 큰 소음에 이제는 정신이 피폐해지고 있다. 올바른 생각이 어렵다.

어제는 같은 병실을 쓰던 남자애가 두 세시간씩 우렁차게 엄마를 부르짖으며 울어대서 냉장고 소리가 하나도 들리질 않았다. Bpm 80정도였을까. 엄마가 안아서 달래는데도,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목이 쉬어라 진성으로 울던 울음소리. 애가 저렇게 쉬지않고 울 수 있구나, 안아도 달래지지 않는 울음이라는게 저런거구나. 하니와 로이는 저렇게 미친듯이 두세시간씩 울어본 적이 없는데. 얘네는 순한 아이들이 맞구나. 나는 서라운드로 고막을 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애써 무시해보며 잠에서 깬 하니를 토닥였다.

정도를 넘어 선 심각한 울음이 한시간 가량 지속되자 아이의 할머니는 화를 내며 아이를 업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퇴원하자 어쩌고 했던 것 같다. 큰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문이 열리고 아이가 나가자 엄청났던 울음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그제서야 우리는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조용해진 병실에 안도감을 느꼈었다. 그때는 안도감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도 시끄럽다니. 잠들지 않은 하니를 포기하고 바닥 매트에 누워 핸드폰에 글을 쓰고 있자, 이제는 1인실로 가버린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복도를 통해 들려왔다. 그래.. 차라리 냉장고 소음이 낫다. 하니도 어느덧 잠이 들었다.




암일지도 몰랐던(결국엔 아니었지만) 남편의 흉부 혹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던 시간에 이어 로이의 폐렴, 입원, 그리고 이제는 하니의 수족구 입원까지. 이제는 나의 힘든 처지를 남에게 말하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 되었다. 또? 또? 또 어떻게 되었다고? 이 와중에 남편은 새 일을 시작해서 오늘부터 서울에 머문다. 탄자니아에 언제 가게 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하니와 단둘이 병실에 격리되어 있다.

잠들지 않는 하니를 옆에 두고, 아이를 키우며 겪는 어려움은 마치 좁은 상자 안에 꽉 갇혀 팔 한번, 다리 한번 시원하게 뻗지 못하는 상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를 대체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기에, 누군가가 상자를 열어 팔좀 뻗으라고 말해주지 않는 이상 뻐근한 몸, 갇힌 생각은 좀처럼 시원해지지 않는다. 교대가 절실하지만 이제는 남편도 서울에 있으니, 교대할 사람도 없다.

냉장고 두대 중에 한대는 안 돌아가고 있었다가, 갑자기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쉬고있었던 한대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음이 갑자기 두배가 되었다. 제자훈련 이번주 도전과제인 “예수동행일기”를 오늘 밤 쓴다면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수님을 얼마나 생각했나요? 냉장고 소음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주님도 이해해주실까?

어제 읽은 성경 한 구절이 답을 해주는 것 같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사38:17]

아멘

'2021년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엔 수족구  (8) 2021.11.10
생떼 도돌이표 안에서 기적을 외치다  (8) 2021.07.29
두 번째 출산  (3) 2021.07.05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