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생활의 이모저모

남편에게 우리 가정이 앞으로 3년간 잔지바르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구글이 내게 보여준 잔지바르의 이미지는 휴양지 그 자체였다. 푸르른 바다와 새하얀 모래사장. 우거진 나무와 파란 하늘. 하지만 멋진 이미지 이면에는 늘 현실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우리가 1년간 살았던 캄보디아 프놈펜을 떠올리며 개발도상국가의 이미지를 되돌이켜봤다. 

막상 이곳에 도착하고 보니 구글이 내게 먼저 보여준 휴양지의 느낌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개발도상국가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다. 잔지바르 살이 2개월 차가 보는 이곳의 짧은 인상 몇 가지를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어려운 점 + 

1. 인터넷 속도 실화인가

인터넷 공급업체는 몇 군데 되지 않은데, 그 중에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를 정도로 서비스와 가격이 난감하다.

잔지바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통신업체인 '잔링크'를 예로 들자면, 1 Mbps에 무려 한 달에 60불 정도. 메인 업체라 가격이 이렇게 비싼가 싶어 우리는 신생 업체인 Cre8Hub와 계약을 맺었는데, 와이파이 설치 비용만 30만 원. 10 Mbps에 한 달에 20만 원이라 했다. (15 Mbps는 참고로 30만 원..)

Cre8Hub의 와이파이를 쓴 지 한 달이 되어가는데 우리의 소감은 '느려도 너무 느리다'는 것. 가끔 완전히 먹통이 될 때도 있다. 며칠 전만 해도 앨범 발매를 위해 음원 모니터링을 해야 했는데, 음향 엔지니어에게 음원을 받아야 하지만 다운로드에 매번 실패했다. (음원은 총 600MB...) 

 

2. 따로따로 장보는 불편함

무슬림 99%의 섬 잔지바르. 알면서도 기본적인 사실을 체감하지 못했다. 여기서는 돼지고기를 찾을 수가 없다. 닭고기와 소고기도 모두 냉동. 닭가슴살을 사고 싶어 정육점 아저씨에게 물어봤더니, 지금 3개월째 컨테이너가 들어오고 있지 않다고 했다. 나는 이유식을 시작한 로이에게 닭고기 맛을 보여주고 싶은데 아직 닭가슴살 부위를 찾지 못해서 메뉴 우선순위에서 제외하고 있다.

소고기는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편이다. 우리는 주로 간 고기, 안심, 필레 부위를 산다. 소꼬리 같은 부위도 파는데 아직 도전해보지 않았다. 닭고기는 있다 없다 하는데, 닭날개만 따로 혹은 냉동 통닭이 가끔 보인다. 

우리는 집 근처 현지 마켓에서 야채나 과일을 사고, 그 맞은편 슈퍼에서 계란을, 그 옆 슈퍼에서 냉동 고기를 산다. Zanfresh라는 체인점 슈퍼에서는 분유나 기저귀, 간식, 멸균우유 같은 유제품, 주스 같은 것을 사고 Stop and shop이라는 슈퍼에 가끔 들려 세제나 샴푸, 과자 같은 것을 산다.

우리의 단골 야채/과일 가게. 놀랍게도 배달 서비스도 된다고 한다.

 

이탈리아인이 최근에 오픈한 창고형 슈퍼마켓에서는 현지 슈퍼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다양한 냉동식품, 나름 고급의 파스타 제품, 소스, 과자 등이 있어서 가끔 들른다. 대신 가격이 너무 세다. 독일에서 살 때 집 앞에 '네토'라는 슈퍼마켓이 있었는데, 그곳 냉동식품은 사실 쳐다도 보지 않았었다. 저렴했지만 그만큼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그때 스쳐 지나갔던 그 냉동식품들이 이 비싼 슈퍼마켓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비싸다. 

이탈리안 마켓. 다양한 냉동식품과 건조식품을 판매한다.

한국의 다이소 같은 공산품을 파는 숍도 있다. 하지만 품질이 떨어지고 가격은 비싸다. 그나마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가끔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산다. 여기서 옷걸이도 사고 빨래 건조대도 사고 감자칼도 샀다. 나름 있을 건 있다. 

 

3. 병원 시스템

잔지바르에 도착하자마자 온 가족이 돌아가며 차례로 아팠을 때, 아이들이 고열에 시달리는 걸 보고 혹시 말라리아가 아닐까 싶어 현지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현지 병원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나름 Global 이름이 붙은 큰 규모의 병원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현지 병원이 다 이런 시스템인지 모르겠으나, 병원에 오면 일단 순서가 이렇다. 접수 -> 수납 -> 의사 방 앞에서 대기 -> 의사와 면담 -> 접수창구에 가서 의사 처치 설명 -> 수납 -> 처치실에서 처치 받음 -> 수납 -> 약 받음.

한마디로 Pay first, treatment later이다. 지인에게 들었는데 앰뷸런스에 실려온 응급 환자라도 pay first 원칙은 동일하다고 했다. 돈을 내야 진료를 봐주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이에 더해 의료 서비스의 수준이 기대 이하다.

하니로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들렀을 때 의사는 일단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체온계는 휘어지고 고장 난 아날로그 체온계였으며, 의사는 아이들의 귀나 목구멍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또 숨소리도 들어보지도 않고, "아. 엄마도 감기, 아빠도 감기, 너네들 다 감기구나~ 원래 한 명이 아프면 다 아픈 법이지~"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피를 뽑으러 처치실에 갔을 때는 호흡기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와 중환자처럼 보이는 환자와 좁은 한방에 있자니, 병원에 왔다가 병을 얻어가면 어쩌나 걱정이 절로 들었다.

병원에 머무른 두세 시간 동안 아이들과 1-2층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의자에 앉아 대기를 하며 느낀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엄마가 의사가 되어야겠다. 한국에서처럼 웬만한 감기로 병원을 찾기에는 온 가족이 고생만 하고 아무 소득이 없다.

 

4. 개미 모기 파리

각오는 했지만 벌레가 정말 많다. 잔지바르 파리는 얼마나 날쌔기까지 하는지 열심히 파리채를 휘둘러도 언제나 보기 좋게 빠져나간다. 모기는 집 안에 들어왔다 하면 영 성가시다. 말라리아를 옮길 수도 있으니 조심도 해야 하지만 아이들이 한번 물렸다 하면 간지러워서 괴로워한다. 하니는 긁느라 바빠 물린 자리가 크게 부풀어 오르고 로이는 긁을 줄 몰라 심하게 칭얼댄다. 모기는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우리도 호되게 몇 번 당하고 난 후에 모기장을 설치했다.

개미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정말 어디에나 존재한다. 언제는 한번 분유 통 안에 들어가 있는 걸 보고 경악했다. 스푼으로 적당히 건져 분주한 개미들을 떠다 버려줬는데, 파묻힌 개미가 어디에 있었는지 (이미 먹고 있는) 로이의 젖병 안에 한 마리 떠다니는 걸 보고, 한 번은 다 버리고 한번은 (얼마 안 남았길래) 마저 먹였다. 이제는 커다란 지퍼백 안에 분유통을 넣고 이중으로 잠가놓는다. 이렇게 한 뒤로는 분유통 안 까지 개미가 들어오지는 않고 있다. 

도처에 개미가 다니는 걸 이제는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팔이 간지러워 보면 작은 개미 한 마리가 털 사이에 묻혀 방황하고 있는데 이런 개미쯤은 당황하지 않고 털어버리며, 줄지어 망고 조각을 향해 가고 있는 개미를 감정 없이 대량 학살하는 정도가 되었다. 개미가 자주 출몰하는 길목에 한국에서 사 온 개미 약을 뿌려봤지만 효과가 오래가진 않았다. 그래도 우리 집에는 개미가 덜한 편이라고 믿고 있다. 음식물이 묻을 수밖에 없는 부엌에 자주 출몰하는 정도. 거실에는 아주 가끔. 방에는 없다.

아직 바퀴벌레는 보지 못해 다행이면 다행이다. 초반에 우리 집에서 같이 살다가 이사를 나간 자매 간사님들의 집에는 불청객 바퀴벌레 선생이 그렇게도 자주 출몰하여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고 했다. 새끼의 사체만 몇 번 발견된 우리 집은 양반인 수준이다. 

 

5. 꿀렁꿀렁한 오프로드

처음에 남편이 사무실 차를 렌트했을 때 나름 괜찮은 12인승 봉고차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흥분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봉고차의 차체가 낮아 오프로드를 갈 때 아슬아슬하게 부딪히는 순간을 몇 번 경험하고서는 왜 이곳 사람들이 차체 높은 프라도나 랜드로바를 선호하는지 알 것 같았다.

길이 꿀렁꿀렁...

지금은 한 선교사님의 차를(프라도) 잠시 빌려 하니 학교 픽업을 다니고 있는데, 봉고차보다 승차감이 확실히 좋다. 잔지바르에 좋은 길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 집 바로 앞 길이 심한 오프로드라 길에 들어설 때마다 이 꿀렁꿀렁한 경험을 피할 수가 없다. 남편은 사비를 들여서라도 파여있는 땅을 매우고 싶다고. 우리도 두 세 달 안에 중고차를 사야 할 텐데 차체 높은 차는 가격대가 높아 망설여지고 있다.

 

 

좋은 점 +

1. 집이 좋아도 너무 좋다

지금까지 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살았던 집을 떠올리자면 신혼집이었던 고양시에서의 작은 신축빌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현지 느낌 나는 빌라, 독일에서의 오래된 빌라가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잠시 머물었던 보길도의 남편 할아버지 집. 그 이후에 잔지바르 빌라로 들어온 샘인데, 우리는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형태의 집을 통틀어 제일 좋은 현대식의 집을 아니러니하게도 이곳 아프리카 대륙,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살고 있다.

아직 어린 둘째를 데리고 아프리카 대륙에 가서 산다고 했을 때 나는 무엇보다 우리가 살게 될 집의 상태가 중요했다. 독일에서 첫째를 키운 경험에 비춰보면 한동안 나와 아이들은 집에만 있을 것이 뻔했고 집의 상태는 곧 나의 삶의 질(=우리 가족의 삶의 질)과 직결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집은 남편이 작년 12월 잔지바르로 출장을 나왔을 때 본 집 중에 하나다. 주택도 고려 대상 중에 하나였으나 경비나 일하는 사람 등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부담과 치안이 좋지 않은 문제도 있기에 선뜻 선택하기 어려웠다. 빌라로 마음을 굳혔을 때 월세가 저렴해진 이 집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보자마자 여기다 싶어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집이 깨끗하고 안전하길 기도했기 때문에 이 집은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살라고 보여주신 집이라 믿었다.

누나는 소파생활 동생은 바닥생활...
요즘엔 잡고 일어서는 재미에 들렸다. :)

 

미리 집을 구해뒀기 때문에 잔지바르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모든 짐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다. 지난 출장 때 미리 구비해 둔 분유나 기저귀도 도움이 됐다. 이것저것 물건을 올려 둘 공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 집 바로 앞집이 이사를 가 모든 가구를 처분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중고 가구도 들였다. 모든 게 기분 좋게 착착 맞아떨어졌다. 전자레인지, 토스트기, 커피포트, 책꽂이, 신발장 등등... 살림살이를 하나씩 장만할 때마다 집이 더 집 다워지고 집을 아끼는 마음도 조금씩 생겨갔다.

이 집에서 로이는 지금의 하니 만큼 클 것이고 하니는 어느덧 큰 어린이로 자라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녹음도 하고 촬영도 하며 내게 맡겨진 소중한 작업을 할 것이다. 가끔은 지인들이 방문해 맛있는 식사 교제도 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 집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참 감사한 곳이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 :)❤️

 

 

2. 휴양지의 매력

잔지바르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변 포인트가 있다. 잘 알려진 곳이 '능귀'와 '파제'인데 집에서 차를 타고 1시간이나 가야 하기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하지만 집 근처 약 5분 거리에도 해변이 있고(여기도 아직 안 가봤지만) 해변 근처 호텔도 두 군 데 있어 심심한 이곳 생활에 놀거리가 되어주고 있다.

 

집 근처 5분 거리 호텔 수영장

그중에 가장 가까운 호텔의 체력단련실(?) & 수영 한 달 회원권을 끊었는데 요즘엔 운동보다는 하니와 수영하러 자주 가는 편이다. 수영이라기보다는 하니와 나 둘 다 구명조끼 입고 물에 떠다니는 정도지만 풀장에 둥둥 떠다니며 파란 하늘을 바라보자니 휴양지에 놀러 온 느낌이 절로 난다. 

더운 나라에 살게 되었으니 수영이나 실컷 하자는 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라 짬이 나는 대로 자주 나가려고 한다. 수영장이 가깝다 보니 1시간 안에도 충분히 놀고 올 수 있다. 회원권을 연장하냐 마냐의 기로에 서있어 아직도 고민 중이다. 비싼 값에 회원권을 연장하면 본전을 뽑아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아이들과 어딘가 놀러 갈 곳이 주변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기에...

 

3. 배달 서비스가 있긴 하다!

집 근처에 외식할 수 있는 가까운 음식점이 있다. 심지어 맛도 훌륭하다. 한 남아공 출신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는 잔지바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돼지고기 요리도 판매한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식당이 배달 옵션도 있다! 이곳에서는 주소가 없기 때문에, 구글맵으로 핀을 지정해서 집을 알려주면 음식을 건물 앞까지 가지고 와서 전화로 알려준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음식이 다소 눅눅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급하게 끼니를 때워야 할 때 (그리고 밥 하기 싫을 때...) 이런 옵션이 있다는 것 자체가 참 감사하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음식점이다.

https://goo.gl/maps/oM8QDAZWDHJQdYrVA

 

Mimi Cafe · Mbweni Road, Zanzibar, 탄자니아

★★★★★ ·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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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s Pub & Resta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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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et bu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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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et Burger (Zanzibar) · Q6W6+V6F, Zanzibar, 탄자니아

★★★★☆ · 패스트푸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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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니의 다문화 경험

하니의 학교생활 적응기에 관해서라면 한참 할 말이 많지만, 하니가 국제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건 이곳 생활의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집 근처에 잔지바르 국제학교가 있어 하니를 만 2세 이상의 Playgroup에 입학시킨 게 3주 전 일이다. 탄자니아 현지 선생님이 담임인데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14명 정도 되는 반 아이들도 서로 영어로 이야기한다. 

하니의 등교 첫날에는 4시간 내내 내가 함께 했었다. 그날이 월요일이었는데,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주말에 뭘 했는지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걸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영어로 말을 한다고!!) 물론 당연히 그러겠지만 내 아이가 그룹에 같이 앉아 앞으로 영어로 말을 하게 될까? 그 이미지를 그려보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등교 첫날. 그룹에 같이 앉기도 힘들어하는 하니...ㅠㅠ..

낯선 환경, 낯선 언어, 낯선 피부색의 사람들을 대해야 해서 요즘 하니는 많이 어려워한다. 처음 2주간은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눈물 전쟁을 치렀는데, 그 이후 방학 한주를 집에서 보내고 다시 다니기 시작한 이번 주부터는 입술을 악물고 눈물을 참고 있다.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더 짠해버린... 하니의 학교 적응기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5. 다다를 고용할 수 있다

현지에서는 집안일과 청소를 해주는 다다dada('자매'라는 뜻이다)를 고용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왠지 모를 반감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혀 모르는 사람과, 그것도 외국인에, 아직 내가 현지 말도 익숙하지 않아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집에 들이고 일을 시켜야 한다는 게 무척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곳에 산지 두 달이 흘렀다. 거실, 화장실과 각 방들은 타일 바닥인데 그 위에 머리카락이 뭉탱이가 되어 먼지와 함께 굴러다니고 있었고, 곳곳에는 흙먼지가 넘쳐났다. 집 바로 앞에 오프로드가 있어서인지 집 안으로 흙먼지가 들어온다. 첫째 둘째를 하루 종일 보며 밥에 이유식에 빨래에... 여념이 없는 나에게 집안 청소까지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남편의 사무실은 집에서 두 세 집 떨어진 곳이라 아주 가까운데, 그곳 경비로 들어온 크리스천 가정의 아내 분이 주 2회 사무실 청소를 맡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경비 급여도 많은 편은 아니라, 경비의 아내를 우리 집에서 조금 더 일하게 하여 돈을 더 벌게 해주면 어떻겠냐는 남편의 제안을 들었을 때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온 가정이 예수 믿는 크리스찬 가정이고, 집도 가까워서 (그분들은 사무실에 딸린 숙소에서 살게 된다) 자주 오고 가기도 편하고, 일자리를 주면 그분들도 좋고 나도 좋은 상황이었다. 이것도 기도의 응답이다. 좋은 현지인들을 만나게 해 달라는.

고마운 루시. 요즘엔 하니 하원시간에 맞춰 나가야 할 때 잠시 로이를 보아주기도 한다.

아내의 이름은 루시. 루시가 우리 집을 맡아 깨끗하게 청소해 준 지 2주 정도 되어간다. 하루에 4시간씩, 주 4일을 와서 청소해준다. 내가 하지 못했던 바닥을 쓸고 닦아주고 쌓여있는 설거지를 해주며 화장실 청소도 맡아준다. 나는 스와힐리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말이 정말 제한적인데, 그걸 또 잘 알아듣고 열심히 도와주고 있으니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루시는 일을 하며 찬송가를 흥얼거리는데, 내가 아는 곡들도 많아 알은척을 하면 반갑다고 또 둘이 각자의 언어로 함께 찬양하기도 한다. 각자의 삶에서 은혜 주시고 역사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 전율이 흐를 때가 많다. 즐겁게 집안일을 하는 루시의 모습을 보며, 엄마의 존재란 늘 찬양을 입술에 머금고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닐까 많이 배우게 된다. 루시의 아이들은 세 명인데 그 아이들은 엄마의 찬양 소리를 듣고 자랐을 것이다. 그동안의 나는 삶에 찌들어 할 일만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아니었을지.. 루시가 와서 느끼고 배우는 게 많다. 

루시의 가정과 우리 삶의 모습이 많이 다르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압감이나 거리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면 마음이 작아지는 것 같다. 잘해주고 싶지만 또 인간적인 선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나의 이웃이 된 이 가정에게 베푸는 손길이 되고 싶지만 너무 급하게, 우리 식대로 해선 안 될 것이다. 

 


잔지바르에 온 지 6개월은 넘은 것 같은데 이제 겨우 두 달이 됐다. 어디 가든 Honeymoon period는 있는 법.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흐르게 되면 지금까지의 인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좋다. 너무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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