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이틀 전 밤, 자다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종아리 근육 수축 때문인지 걷는 모양이 불편했다. 왼쪽 종아리 근육이 심하게 뭉친 것 같은데 나는 마사지에 영 소질이 없어서 내 근육인데도 주무르는 폼이 시원치가 않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걷기를 하루 쉬기로 했다. 요즘 매일 50분씩 3km 정도 수준으로 느릿느릿 걷는 중이다. 걷는 속도가 무척 느리지만 몸이 무거워 그것마저 무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걸은지 30분 정도 지나면 벌써 걸음이 느려지고 호흡도 가팔라진다. 겨우 3km를 채우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 들어오면 아침인데도 피곤함이 몰려온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데 이 정도도 안 걸으면 정말이지 사람이 아니지. 그렇지만 산책을 나가는 날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종종 나는 사람답지 못하게 산다. 정기적으로 나가 걷기 시작한 지도 겨우 한 두 달이 되었을 뿐이다.

그동안 동네 산책에 게을렀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일단 운동에 큰 우선순위를 두지 않은 나의 게으름 탓일 것이고, 나가기만 하면 모두의 구경거리가 되는 게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할로 치나!(안녕 중국인!)'이라며 지나가는 나를 향해 대뜸 불러 세우기도 하고, '니하오'랄지, 혹은 이곳 인사말 '하바리, 잠보, 맘보'로 인사를 건네는 게 도무지 정겹고 살갑게 와닿지가 않는다. 왜 그렇게 지나가는 외국인 여성에게 관심들이 많은지, 무방비 상태로 걷다가 면전에 얼굴을 들이밀고 '잠보!'라고 꽥 소리치는 현지 남자들을 마주치면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욕지거리가 솟구친다. 현지 여자들은 결코 이렇게 무례하게 인사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젊은 남자들의 농담 따먹기에 내가 활용됐다는 불쾌함에 나는 매번 싫은 느낌을 받는다. 나이가 좀 있는 아저씨들의 인사는 그렇게 경박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저 이 길을 지나가는 나에게 표하는 인간적인 인사 예절같이 느껴진다. 젊은이들은 껄렁껄렁하고 빙글빙글한 미소로 들러붙는데, 내가 배불뚝이 8개월 임산부임에도 그러하니 산책을 나갈 때마다 매 번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귀로 에어팟을 끼며 오디오북을 들으며 걷고 있는데 어느 자전거 타는 젊은 남자가 골목에서 불쑥 등장하더니 특유의 빙글빙글한 미소로 내 느린 걸음걸이에 보조를 맞추는게 아닌가. '잠보'하고 느끼하게 웃길래 땅바닥만 쳐다보고 '맘보, 포아'하고 대충 대꾸하고 걷는데, 한참을 웃으며 보조 맞춰 따라오길래 걸음을 멈추고 눈에 힘을 주고 현지어로 말했다. "뭐, 나한테 필요한 거 있어?" 그 남자는 타격감 없이 여전히 빙글빙글 웃으며 어깨를 쓰윽 한번 올리더만, 자전거 페달을 밟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자전거 위에 위태롭게 앉아 페달을 밟는 남자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았다. 심장이 쿵쿵거리길래 배를 부여잡고 잠시 숨을 골랐다. 이 길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다. 나는 지금 약자고 혼자다. 

내가 걸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무슨 구경거리인 듯 쳐다보지 않고 재밌다는 듯 인사를 걸지 않는 내 나라의 어느 한적한 골목길이 그리워진다. 출산하러 한국에 들어갈 날이 이제 다음 주로 다가왔다. 남편과 점심을 먹으며 "이제 한국 갈 날이 진짜 며칠 안 남았어."라고 했더니 남편은 "그 말 매일 하고 있는 거 알아?" 한다. 어디 매일 뿐일까.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나는 그저 중요한 날짜를 받아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한국 가는 날을 기다린다. 도착하자마자 인천공항의 한글 표지판은 나를 반길 것이고, 나는 양탄자같이 매끈한 도로를 타고 도시로 빠져나갈 것이다. 도착한 날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도 한 2주 전쯤 미리 정해두었다. 꼬리가 무척 길고 도톰한 생선초밥 1인분을 먹을 것이다. 아직 오지도 않은 귀국일에 이토록 설레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다니, 이 그리움의 깊이를 나는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아이처럼 들뜬 내 표정을 보더니 남편은 말한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감정 아마 못 느끼겠지?" 이렇게 한국이 좋을 거면서 나는 왜, 어쩌자고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있는 걸까.

한국에 가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가족들과 친구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같은 질문을 내게 할 것이고 나는 아마도 비슷한 대답을 만나는 사람마다 반복하게 되겠지. 내 대답은 아마 시원치않을 것이다.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나에게 그럴싸한 멋진 대답이 준비되어 있을 리가 없다. 그저 나와 내 가족은 이 삶을 선택했고 선택에 최대한의 책임을 지며 소중한 것을 발견해 내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삶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시련을 여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과정에 있으며,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내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이런 긴 설명보다, "그냥 살지 뭐."하고 말 나의 짧은 대답에 깊이를 헤아려줄 친구들의 품으로 나는 곧 간다.  

반응형

'탄자니아, 잔지바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튜브를 쉬는 동안  (6) 2022.08.29
잔지바르 생활의 이모저모  (17) 2022.03.03
탄자니아 도착 생존신고  (12) 2022.01.12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