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114] 비가 쏟아지는 소리

비가 창문을 때린다. 이렇게 3시간 넘게 내리 쏟아지는 것도 처음겪는 일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개구리가 울고 있으려나 귀를 기울여보지만 나올 때가 아닌지 빗소리만 가득하다.

몇도 쯤 됐을까. 습관적으로 체크하는 것 중 하나다. 지금 나는 몇도의 온도에도 선풍기와 바깥 바람 한 점 없이 버티고 있는 걸까. 30도? 32도? 이상하게 땀은 나지 않는다. 사람의 적응력이란게 대단하다. 40도가 넘는 더위, 땀방울을 내리쏟게 만드는 무서운 폭염에도 그러려니 하는 적응. 추위는 더위보다 견디기 힘들까, 궁금하다.

오늘은 개가 울지 않을 것 같다. 침대맡에 누우면 도미노 넘어지듯 울어대는 개들의 합창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왈왈짖는 울음이 아니다. 구슬프고 처량한 울음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보고 울부짖는 개, 효를 다하지 못하고 가슴치며 후회하는 개일까. 화음 넣어가며 바톤을 이어받아 울음에 동참하는 이웃집 개들은 참 의리가 있는 것 같다. 위로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대화를 하는 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집을 비우고 침대에 혼자 벌러덩 누웠다. 침대가 참 크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쩍 폈는데도 품이 넉넉하다. 이렇게 여유롭지 않아도 좋으니 어서 남편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늘밤은 혼자 자야겠지. 원래같았으면 하품을 몇번이나 깨물었을텐데 의식은 또렷하다. 적지않은 빗소리, 이 빗소리가 방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캄보디아 우기철에 내리는 비는 낭만적이지 못하다. 하늘에서 꼭 실수로 수도꼭지를 최대로 돌려놓은 것처럼, 세숫대야에 가득 담긴 물을 난데없이 들이붙는 것처럼 쏟아진다. 꼭 장난치는 것 같다. 소리도 굉장하다. 폭포가 지면을 때리는 소리. 솨아아아, 그것은 맑다기 보다 빼곡하다. 한 두방울씩 떨어지고 있다기보다 물줄기가 쏟아내려지는 소리. 그 어떤 인위적인 소리도 다 삼켜버리는 강한 소리.

어느 한국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밤. 가로등 밑에서 극적인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번엔 캄보디아 프놈펜, 어느 골목 어귀에서 지금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는 연인들을 상상해본다. 쫄딱 젖은 생쥐처럼 자기네들이 하는 얘기도 하나도 안들리겠지. 곧 거리는 배수가 안되서 강물을 이룰 것이다. 온갖 오물을 담은 검은 강물.

번개가 친다. 아직도 비가 오고 있다. 쉴새없이 내리는 비는 내일이면 거짓말처럼 금새 마를 것이다. 말끔한 뭉게구름도 고개를 들겠지. 방안 가득한 빗소리를 들으면서 내일의 태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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