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6. 05:30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하니와 주말 외출은 나가기 전 숨 고르기와 큰 마음을 먹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가는 타이밍은 아기 밥 먹인 후부터 1시간 내, 하니가 슬쩍 졸음이 오기 시작할 때 유모차에 태워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여유가 있다면 공원 산책 코스를 넣어 한바퀴 쯤 콧바람을 쐬지만 여하튼 우리의 종착역은 늘 카페와 슈퍼다. 기껏 주말에 나간다는 곳이 슈퍼나 카페라니 소박하기 그지없다. 다음 주 이유식에 쓸 재료와 우리가 먹을 과일과 채소를 골라야 하고 하니가 먹을 분유도 사야 한다. 주중에 육아를 하느라 나는 주로 집에 있고 장은 남편이 봐오기 때문에 식재료를 눈으로 보고 장바구니에 담는 재미를 느끼려면 주말밖에 기회가 없다. 젖병 두개와 따뜻한 물, 분유를 담을 통을 챙기고 기저귀 파우치까지 가방에 넣으면 준비..
2019. 8. 25. 06:16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세상에 이런 행운이 있을까 싶은 것이 최근에 한인교회에 등록해서 친하게 지내게 된 두 자매들이 우리 집과 걸어서 10분 반경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구역 만 리 타국에서 동네 친구, 그것도 한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니 엄청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거국적으로 이 친구들에게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걷기 운동을 제안했고 우리는 일명 '다이어트 클럽'을 만들어 2주째 무려 주 4회 이상 만나며 동네 근처를 걷고 있다. 모유수유 비중을 줄이고 분유를 주로 주게 된 시점과 맞물려 나에게 외출의 자유가 생긴 것이다. 저녁 6시쯤 하니를 재우고 남편과 저녁을 잽싸게 먹은 뒤, 하니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저녁 7시, 나는 홀홀단신의 가벼운 몸으로 다이어트 클럽 멤버들과 만나고 있다. 솔직히 말해 ..
2019. 8. 24. 15:00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하니가 소리 내서 웃는 것이 좋아서 그 순간을 이끌어내고자 하니 앞에서 재롱을 떨 때가 많다. 함박미소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사랑스럽지만 그 아이의 웃음, 그 찰랑거리는 햇살 같은 소리가 듣고 싶어 나는 매번 안달이 난다. 어떻게 하면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시도를 기울인 끝에 하니가 간지럼을 조금 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아직까지 시도 대비 성공률이 매우 낮아 안타깝다. 하니의 몸을 마구 간지럽히면서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면 하니가 가끔 "허허"하고 웃을 때가 있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간지럽히면서 하니의 표정을 살펴보면 어떤 게이지 같은 것, 한마디로 터질 때까지를 본인도 기다리는 눈치다. 정말 열심히 간지럽히며 우스꽝스러운 소리도 많이 내는데도 빵! 터지..
2019. 8. 23. 17:00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하니 생후 150일째 되는 날은 그 깔끔하게 떨어지는 숫자보다 더 나에게 특별하고 놀라운 날이었다. 우선 하니는 뒤집기가 가능하게 되어 시도 때도 없이 뒤집었다. 잠깐 주방에 다녀온 사이에 천장을 보고 있던 하니가 갑자기 팔을 괴고 배를 깔고 있는 식이다. 지난 5개월간 아기는 눕혀만 놓으면 큰 자리 이동이 없었기에 가히 이 뒤집기는 내게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라 하겠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시 아기를 보면 자세가 바뀌어있고, 다시 가서 되집어주고 왔는데 또 안 보는 사이에 뒤집고. 자기의 의지인지 몸의 본능인지 하니는 자꾸만 뒤집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너무나도 감격스럽다!!!! 그리고 드디어, 150일이 된 저녁 밤. 나는 하니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통잠을 자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 ..
2019. 8. 23. 05:12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모든 아기들이 그러하듯 하니의 아침 일과는 간단하다. 5시 반이나 6시쯤 기상하면 분유를 먹고 놀기 시작한다. 우리가 일어나기 전에는 혼자 옹알이를 하며 놀다가 우리가 일어나면 품에 안겨 집안 곳곳을 관찰하는 편이다. '네가 자고 있어도 집안은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어제 하니가 잘 때 아빠 엄마는 무엇 무엇을 했어."라며 엄마 아빠의 보고를 듣는 식이다. 거실과 복도, 주방과 작은방을 돌고 다시 안방에 들어오면 옷장에 붙어있는 큰 거울을 보여준다. 하니는 팔을 뻗어 옷장 문을 여는 동작에 푹 빠져있다. 지칠 때쯤 다시 침대에 눕혀 노래를 불러주거나 비행기를 태워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일어난 시간으로부터 1시간 반이나 2시간이 되면 다시 침대에 눕힌다. 하니는 졸리면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하품을 하기 때..
2019. 8. 20. 05:47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하니는 그대로인데 내가 조금 바뀌었다. 하니는 여전히 잘 먹기도 하고 먹다가 짜증을 내기도 한다. 예전같았으면 짜증의 모든 원인을 나로 돌렸을 것이다. 내 모유가 부족해서, 결국 나 때문에. 이런 생각의 연결고리에 갖혀 아이의 반응에 전전긍긍했던 것이 사실이다. 모유가 하니에게 부족했던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 분유와 함께 혼합수유를 해오고 있는 50여일 동안 아이는 전보다 더 배부른것 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하니는 여전히 모유만 먹었을 때처럼 먹다가 짜증을 내거나 먹을 것에 관심이 없거나 먹다가 울기도 한다. 아이가 충분히 먹을 양의 분유를 타서 물려 주는데도 절반도 못 먹고 버리는 것이 우리에겐 일상이다. 이제 양의 부족이 아이의 거부나 울음에 원인이 되지 않는 것이 확인 되었다. 나는 조금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