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 담넘듯 독일 유학생이 되었다

오늘은 기념적인 날이다. 약간의 흥분과 떨림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11월은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했던 달이었다. 독일에서 석사유학을 시작한 남편과 함께 이곳에 왔지만, 만 30세가 넘는 남편의 나이 때문에 공보험 가입이 되지 않아 아직도 보험은 미완결 상태였다. 계속되는 거절에 지칠대로 지쳐, 차라리 내가 학생이 되어버리자고 결정하기까지 이 11월 한달간 내적으로 많은 고민의 시간을 거쳤다. 

발도르프 교육이 뭔지도 몰랐다가 흘리듯 건낸 한 지인의 권유('혜진씨 발도르프 배워보면 좋을 것 같아요!')가 이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내가 배울만한, 나의 과거 경험과 연결 될 만한 과정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가, 우연히 알게된 이 발도르프는 내게 설득력이 있었다. 

발도르프 교육은 1919년 오스트리아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창한 교육 사상으로 이곳 슈투트가르트에서 시작된 대안교육이다. 개별 학생을 고려한 전인교육을 추구하며 아동의 신체의 성장에 맞춘 의지, 감각, 사고의 조화로운 발달을 추구한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음악치료 세션을 하면서 아동에 대한 깊이있는 철학과 경험이 부족하다고 깨달았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공부해볼까 하는 도전의식이 생기기도 했다.

자연친화적인 접근이 특징적인 발도르프 페다고지.

그래서 번갯불 콩궈먹듯 지원하게 된 Freie Hochschule Stuttgart. 한국에서는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 사범대학이라고도 불리는 듯하다. 내가 지원한 과정은 1년 6개월 기간의 석사과정으로, 한마디로 발도르프 대안학교 담임교사 양육 과정이다. 나는 독일어가 어버버하므로 영어과정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고서도 의문은 계속 들었다. 독일어 과정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금액의 학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장학금은 받을 수 있긴 한건지. 나를 자꾸 가로막고 의문을 품게 하는 건 아마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일단 원서를 써보자, 그리고 합격하면 일단 장학금을 신청해보자, 뭐라도 해보자고 단순하게 결심을 품고 일단 motivation letter를 써 내려갔다. 지원에 필요한 서류는 복잡하지 않았다. 1) application form, 2) motivation letter, 3) 학위증명서, 4) 성적 증명서 이것이 전부이다. 영어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공인 영어점수를 필요로하지 않았던게 정말 아이러니이자 땡큐. 덕분에 지원하는데 곤란함이 덜었다.

그렇게 지원하고 10일이 지났을까. 합격했다는 이메일을 받게 됐고 그 합격증을 들고 오늘 독일 공보험 회사 중의 하나인 AOK에 찾아갔다. 3개월. 수많은 공보험 회사에 찾아가 상담을 받고 가입하기 위해 우리 부부가 짠내나는 노력을 들인 시간이다. 제발 받아달라고, 학생보험 자격이 안되면 두 배 금액을 내고서라도 가입하겠다고 사정사정 통사정을 했던 지난 날이 스쳐지나간다. 드디어 오늘 아침.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AOK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단 10분만에, 학생보험 가입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10분. 믿겨지지가 않다. 물론 아직 완료가 된 건 아니고 정식으로 보험카드가 나와봐야 끝난 것을 알겠지만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것만으로도, 거절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 그동안의 수고는 오늘을 위해서 있었을까. 수많은 삽질이 있었기에 오늘의 기쁨이 배가 되는 듯하다.

* * *

얼떨떨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와 이 기쁨을 남편과 함께 나누고 이 기세를 몰아 장학금 신청까지 해버리자, 하고 자리에 앉았다. 합격증을 받은 월요일에 뭐라도 써보자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장학금 신청 레터 초안을 열어 수정을 시작했다. 이 편지로 어필이 충분히 될지. 자꾸만 레터를 읽어보면 손가락 발가락이 전부 다 오그라들 것 같은 느낌이지만 더 오래 끌고 있어봤자 얼마나 뭐가 달라질까 싶어 메일을 보내기로 결정. 이로서 오늘 보험도 장학금도 모두 내 손을 떠났다. 

앞으로 학생보험이 접수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처리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고 장학금도... 이 부분은 긴장을 놓칠 수 없을 것 같지만 11월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지금, 새로운 소망이 마음에서 꿈틀대고 있다. 2018년, 나의 서른살이 기대된다.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