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20대의 마지막 연말, 12월 근황

20대의 마지막 연말을 독일에서 맞이하고 있다. 도시는 이미 엄청난 축제 분위기로 가득하다. 동네방네 모든 사람들이 다 시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지 이리저리 거리를 오고가는 인파로 시내는 발딛을 틈이 없다.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사고 크리스마스 소품을 사고 엽서를 사고 먹을거리를 사먹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하고 온갖 반짝이는 조명과 크고 작은 공연팀들의 캐롤송이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어제 오늘 남편과 나도 거리의 분위기에 휩쓸려 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교회에서 한다는 선물 교환식 때문에 모양새 맞는 선물을 고르느라, 연말에 집에서 먹을 소소한 먹거리와 필요한 작은 소품들을 사느라 두 세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돌아다녔는데도 축제 분위기에 젖어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화려한 거리

26일에는 우리부부와 또 지인 부부가 함께 넷이서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4박 5일 여행을 떠난다. 가서 먹을 것들이나 필요한 것도 사고 환전도 하느라 조금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연말에 밀린 만남 약속은 또 갑자기 왜 이렇게 많아지는지. 그 정신없는 와중에 오늘은 남편과 함께 교회 사모님댁까지 쫓아가서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담궈 가지고 왔으니 말 다했다. 심신이 다 지쳐버렸다. 그런데 내일은 주일. 그 다음날은 성탄 예배. 하나님도 이런 정신없는 마음은 기뻐하지 않으실텐데. 빈수레가 소리만 요란하다고 2017년 연말 성탄절을 앞둔 내 마음이 딱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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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는 독일어 인텐시브 코스를 듣기로 했다. 어학비도 큰맘먹고 결제했다. 나는 원래부터 어학에는 돈을 철저히 아끼려고 했던 사람이라 이만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하겠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미끄러졌던 것이 영향이 되어 큰 돈도 쓸 줄 알게 됐으니 모든 일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향이 있는구나 싶다. 

독일어를 독학했던 지난 3개월의 시간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름대로 내가 원하는 부분을 탐색하는 재미가 있었다. 독일어라는 망망대해를 둥둥 떠다니며 스노쿨링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아주 깊이있게 쑥 들어갔다고는 말 할 수 없겠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즐거워하는 만큼 보고 듣고 놀고 탐색하는 것도 나름 좋은 시간이었다.

문제는 시간. 혼자서는 인텐시브 코스 만큼의 시간을 쏟아 붓기가 꽤 난감하다. 학원에 다닌다면 일단 4시간은 엉덩이 박고 앉아있으면서 선생님이 말하는 거나 친구들이 말하는것을 들으면서라도 시간이 갈텐데 혼자서는 1시간을 코박고 집중하기가 어렵긴 하다. 1시간 집중하고 10분 쉬고 1시간 가볍게 공부하고 10분 쉬고. 뭐 이런 식으로 대충 길게는 5시간 넘게 앉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런 날이 한 달에 많진 않다. 

또 하나 더 있다. 규칙적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나는 공식적으로 '집에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모임 저런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여러모로 '학원 가는 여자'가 되면 하루에 4시간만큼은 독일어에 투자할 수 있는 저력이 발생하니까. '집에 있는 여자'보다 '학원 가는 여자'가 되는 편이 좋겠다 싶다.

스위스 여행을 다녀오고 난 바로 그 다음주 화요일, 어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를 보고 그 다음주부터 어학 수업이 시작된다. 과정마다 텀이 짧아 이런 식의 일 4시간 수업이 거의 매일매일 7월까지 쭉 계속될 것 같다. 한 3개월 하다보면 또 혼자 공부했던 때가 좋았던 때라고 우는 소리 하는 날이 오겠지만. 이리 부대끼고 저리 부대껴도 적어도 1년간은 꼬박 독일어를 붙잡고 시간을 쏟아붇고 혼자 씨름해야 할 것이다. 2018년, 나의 서른살은 낯선 언어와 함께 시작하겠구나. 이 길이 또 어떤 길로 나를 연결해줄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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