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인터라켄 4박5일 겨울여행 ★ 미친듯이 썰매타기

흐린날의 융프라우요흐지만 괜찮아 

오늘은 처음으로 융프라우에 올라가는 날!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했다. 첫 차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체력이 받쳐주질 않아 급하게 준비하고 밥먹고 나오니 7시 15분. 빠른 걸음으로 Interlaken ost 역으로 향했다. 

눈덮인 조용한 마을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 일단 융프라우 요흐는 볼 생각이었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눈이 오면 오는대로 나름의 멋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가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은 순조로웠지만 역시 고도가 높다보니 몸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가 멍해지고 몸이 축 쳐지고 조금만 움직이거나 말을 많이 하면 금방 헥헥거리고 숨이 찼다. 흑. 다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뒷짐지고 천천히 걸었다.

기차를 타고 요흐까지 도착하면 바로 휴게소같은 곳이 나오는데 가보니 많은 한국사람들이 컵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인터라켄에는 정말 한국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컵라면을 먹을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참았다가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오기로 결정. 우리는 컵라면하고 먹으려고 참치 삼각김밥까지 싸왔다구.★

요흐 내 전망대와 얼음궁전으로 구성된 코스를 한바퀴 도는데 몸에 기운은 하나도 없지 속은 울렁거리지 게다가 전망은 꽝. 눈보라가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에 창문 밖으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밖에 나가보자고 나가봤지만... 사정없이 내려치는 눈보라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였으니. 소위 말하면 남들이 보는 파란 하늘과 빨간 스위스 국기를 못 본 샘인데도 왜 이렇게 이 사진만 보면 웃기는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의 베스트샷. 이 사진만 보면 그때 깔깔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10시에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해서 11시까지 걸으며 보다가 다시 휴게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준비해온 참치 삼각김밥과 융프라우VIP패스로 얻은 컵라면을 함께 먹으며 꿉꿉한 속을 풀었다. 하..이때 먹은 삼각김밥과 컵라면은 인생에서 손꼽힐 정도의 맛이었달까.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고산증 증세때문에 그랬는지 뜨거운 국물과 김밥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최상의 맛을 만들어줬다.

기력을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하산하기 위해 열차를 탔다. 융프라우 요흐에서 50분정도 내려가 클라이네샤이덱에 도착. 고산증 증세도 한결 괜찮아졌고 우리는 눈덮인 설산을 보고 점점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썰매타고 클라이네샤이덱(2,061m)에서 그린델발트 그룬드(937m)까지

오전에 올라왔을 때보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져 마을에 활기가 넘쳤다. 대부분 근사한 스키 장비를 가지고 현란한 기술로 산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모두 한마음이 되어 이 아름다운 융프라우에서 겨울 액티비티를 뜨겁게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름의 감동이 느껴졌다.

우리도 뭔가 해보자, 요흐도 잘 못보고 온 마당에, 이런 의견이 모아져 클라이네샤이덱에 있는 스포츠 매장에서 썰매를 빌렸다. 썰매는 3가지 종류가 있었다. 플라스틱 (10프랑), 나무썰매(15프랑), 철재썰매(20프랑). 나무나 철재 썰매는 속도가 심각하게 빠르다는 점원의 추천을 듣고 우리는 플라스틱 썰매를 대여했다. *반납을 아래에 하는 조건으로 5프랑씩 추가.

이때만 해도 즐거웠지. 썰매타는 경험이 너무 색달라서.

신남의 절정.

우리가 무엇을 시작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각조차 없이 곧바로 엄청난 여정을 시작하고야 말았다.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수가 없는 무시무시한 썰매타기의 여정이. 클라이네샤이덱에서 그린델발트 그룬드까지. 총 5km가 넘는 길이와 고도 1km가 넘는 높이를 내려오면서 우리는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했다.  

썰매의 속력을 이기지 못해 눈밭에서 구르고 얼굴을 눈바닥에 지지고 엉덩방아를 여러번 찢고 썰매를 놓치고. 능선은 험란했고 안전바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초등학생 이후로 썰매를 타본 기억이 흐릿한 썰매 초보자들. 그래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1시간이 넘어가고 2시간이 넘어가니 드리프트 스킬까지 쉬이 몸에 익힐 수 있었다.


눈덮인 융프라우 산을 바라보며 썰매타는건 정말이지 최고였다.

박군과 나는 눈이 뒤집혀서 미친사람처럼 썰매를 타고 있는데 함께 온 언니가 너무 무리를 했는지 여러차례 토하기까지 했다. 흑.. 우리는 문자그대로 토할 때까지 썰매를 탄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썰매타는게 너무 재밌어서 몸에 무리가 가는줄도 모르고.. 스물아홉의 끝자락에서 초딩처럼 3시간넘게 썰매타는 모습이라니. 깔깔깔.

썰매 특성상 양 다리로 브레이크를 걸어야하기 때문에 신발과 발등, 발목 부위가 심하게 눈에 젖어버렸다. 외투는 이미 축축하게 젖었고 신발과 청바지까지 모두 축축했다. 방수되는 부츠를 신기는 했지만 양말과 청바지를 타고 내려오는 물기는 순식간에 부츠 안을 다 젖게해버렸다.

3시간동안 썰매를 타고 내려오면서 줄곧 보아온 장관. 예술이다.

언덕하나 넘으면 곧바로 떨어져버릴 것 같은데 끝없이 이어진 썰매구간.

잠시 멈춰서 경치구경. 기차타고 올라갈때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찝찝하고 춥고 토하고 몸이 쑤셔도 세상에나.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내 생애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었던 사건은 처음인 것 같았다. 초등학생 이후로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놀이에만 몰입하며 즐거웠던 건 처음 아니었을까? 넘어지면 넘어진대로, 잘 내려오면 그 성취감에, 웃고 만족하고 기뻐했던 3시간동안 우리는 세상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숨막히게 아름다운 융프라우 산을 바라보며 심장이 터지도록 짜릿했던 썰매타기. 서른 전에 경험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아마 죽을 때까지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좋았어. 내년엔 스키타러 다시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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