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먹어도 괜찮아

   지금 내 옆에는 곤히 잠에 빠진 천진난만한 내 남편이 누워있다. 스르륵, 먼저 잠들었다. 그가 먼저 자기로는 캄보디아에 와서 손을 꼽는다. 항상 내가 먼저 잠에 빠졌기 때문이다. 잠에 든 그의 얼굴은 천진난만하다. 소년같기도 하고 아이같기도 하다. 무방비 상태. 세상에 불만하나 없이 거짓없고 순결한 모습.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매일 밤 잠에들고 아침을 새롭게 맞이할 수 있어 참 행복하다. 사랑스러운 남편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가 가득 채워지는 경험. 이런 존재감은 너무나 새롭고 신비하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나는 그동안 내 꿈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결과를 어서 내놓으라고 스스로에게 채찍질 하면서. 태어났으니 뭐라도 해야 쓸모가 있는거 아니냐고.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했다. 내가 선택해서 들어간 길에서 스스로 나오고, 남편만을 따라 낯선 땅 캄보디아에 올 수 있었던 까닭도, '쉬어도 괜찮아'를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많이 자도 괜찮아. 꿈이 없어도 괜찮아. 빈둥대도 괜찮아. 놀고 먹어도 괜찮아. 그동안 나에게 모두 '괜찮지 않았던 영역들'이다. 너무 팍팍하게 살아왔다.

   2017년이 2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지나고보니 나도 곧 스물 아홉이다. 맙소사. 결혼한지는 벌써 2년이나 흘렀다. 아직 더 놀고 싶은게 많은데. 여행도 다니고싶고 자전거도 타고 글도 많이 쓰고 싶은데. 서른이 코앞이다. 방심하다가 세월이 나보다 먼저 가버렸다. 가끔 내가 스물 여덟이라는 사실에 깜짝놀란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가는 세월 잡을 수 없을거고, 앞으로의 날들을 기대해야지.

   일단 캄보디아를 떠나기 전까지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글을 많이 써야겠다. 세상에 2012년부터 써오던 몰스킨 일기장을 아직도 쓰고 있다. 2016년이 되어선 두번인가 글을 써놓곤 이제야 성급하게 여백을 채우고 있다. 그 사이에 글을 안썼다는 건 아닌데. 여기저기 분산해서 쓰는 바람에 추적하기가 어렵게 됐다. 두달이 남은 지금 이 빨간색 몰스킨이라도 채워보고 싶어서 매일매일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곳에 잘 기록해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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