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지낼 집을 구하다

큰일이다. 7시부터 졸리기 시작하니. 어제도 잠깐 방심한 사이에 꿈뻑 잠이 들어서 씻지도 못하고 자버렸다. 

집 계약을 끝냈다. 이건 우리 부부의 인생에 아주 엄청난 사건이 될 것 같다. 독일에 오고 4일쯤 지났을까. 집주인의 승낙을 받았으니 초단기로 해치워버린 거다. 굉장히 어리둥절하다. 큰돈이 오고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뭔가 더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됐다고나 할까.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많이 긴장한 상태이다.

독일에 오기 전 한인 사이트를 통해 이미 한 곳의 가계약을 해 둔 상태였다. 사실 집을 보지도 않고 거금의 선금을 걸어놓은 거라 이렇게 결정 하기까지 심적 갈등이 꽤 컸었다. 혹시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이렇게 집이 쉽게 나오지도 않은 곳이라고 하니 지금 계약하지 않으면 후회 하겠지. 이런 생각이 오락가락해서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될 때, 마음을 놔 버렸다. 물에 빠질까 두려워서 돌다리만 두드리다가 결국 못 건널지도 모른다. 빠질 때 빠지더라도 한번 과감하게 건너보자, 하는 심정으로 선금을 보냈었다.

우리가 살게 될 집. :)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고 바로 그 다음날. 떨리는 마음으로 가계약한 집을 찾아갔다. 정말 놀랍게도 집은 너무 좋았다. 거실 창문 너머로 푸른 와인밭이 펼쳐져있고 저 멀리서는 동화속에서 나올법한 독일식 집 몇채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말도 안돼. 집 밖 창문으로 아파트와 도로가 보이는게 아니라 푸르른 와인밭과 하늘이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거실 창문 밖 풍경. 너무 예뻐서 한 눈에 반해버렸다.

창 밖 풍경을 보면서 글도 쓰고 공부도 하고. 벌써 이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거실은 이런 느낌.

집은 부엌도 크진 않지만 알차게 갖춰져 있었고 나머지 큰방과 작은방도 괜찮았다. 아니 결점같은 게 가려질 정도로 아주 좋았다. 우리는 얼떨떨하게 집주인에게 보낼 서류를 서둘러 준비했다. 자기소개하는 편지, 박군의 이력서, 학교에서 보내온 합격증, 재정보증 관련된 서류였다. 독일에는 집주인이 깐깐하게 세입자를 고른다고 들었다. 똑같은 조건이라도 학생보다는 직장인, 직장인 중에서도 독일에 눌러 앉고 살 사람을 구한다고. 우리도 집주인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독일에 눌러 살 생각이다"를 강조하며 서류를 준비했다.

메일을 보내고 이틀쯤 지났을까. 우리 부부에게 집을 허락(?)하겠다는 메일을 받게 됐다.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인 세입자 분이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해주셨다. 우리를 친한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고 앞으로 독일에 눌러 살거라는 걸 잘 어필해주신 것 같다. 세상에. 그래서 우리는 독일에 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계약서라는 것을 쓰게 됐다. 

우리도 어지간히 속 편하게 사는 것 같다. 보통은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 계약서 조항들을 꼼꼼히 번역기 돌리고 확인을 하는 게 보통인데, 그놈의 시차적응 때문에 계약하기 전날 초저녁부터 골아 떨어져 버린거다. 나중에 사인하고나서야 계약서를 번역하긴 했는데 다행히 엉뚱한 조항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앞으론 조심해야지.

테라스가 마음에 든다. 빨래도 널 수 있고 일광욕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뻥 뚤려있다!!

긴장이 많이 된다. 아, 이거 언젠가 겪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맞다. 우리 결혼 준비할 때다. 신혼집을 정하고 혼수를 사고 결혼식을 위해 드레스나 스튜디오 촬영을 어떻게 할지 정했을 때. 평범하지 않은 큰 지출이 몇 개월동안이나 지속됐다. 전세 집 구하기나 혼수한다고 돈 쓰는거나, 지금과 그 부담감이 비슷하다. 선택에 책임이 따르기에 무거워진다.

그때도 나는 태평했다. 신혼집을 정할때 심지어 나는 가보지도 않았으니까. 남편에게 모두 맞겨버렸다. 그때 나는 논문과 인턴으로 몹시 바빴었다. 졸업하는 게 최우선순위였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살 집인데도 신경을 꺼버렸다. 스위치를 off 하듯이. 박군이 형과 함께 집을 계약하고 나서야 가본 것 같다.

그때와 지금, 별 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고를 수 있다면 고민도 적당히 필요하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번뇌의 스위치를 꺼버리는 게 좋다. 좋은 점만 보고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은 눈감아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큰 돈을 들이고 인수받는 중고물품들이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새로 사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 좋다고 여기는거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일은 집을 계약하고 주거지를 등록하는 거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좋은 의미에서는 독일에서 살게 될 첫번째 집에 곧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집이 생각보다 너무너무 좋기 때문이기도 하고, 반대의 의미에서는 어리버리하게 있다가 대형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봤는데 실망스러운 것이 튀어나오면 어떡할까. 그렇게 되더라도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 놓을 생각이다. 혹시 알아?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도 꽤 괜찮은 건지도 모른다. 나 이러고보니 완전 긍정적이구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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