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엄마들 모임에 가려고 하면 벌어지는 생각들

나도 새로운 시도는 늘 어렵다.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을 찾아보기는 하지만 막상 가기까지는 쉽지가 않다. 6-7개월까지는 쭉 괜찮았다. 하니가 누워있으면 나도 마음 놓고 이것저것 할 수도 있고, 같이 누워있기도 했다. 하지만 하니가 잡고 일어서고 엄청난 에너지로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집에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하니를 데리고 나가야 했다. 

 

어디든 가야한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로 2주간의 긴 연휴가 끝이 나고 남편은 다시 학교와 알바가 반복되는 일상이 시작됐다. 고로 나의 독박 육아의 세계가 다시 열린 것이다. 오늘부터는 내 의지로 집 밖을 나서야 한다. 처음엔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자, 어디 독일 엄마들과 독일 아이들 좀 만나러 가볼까, 이렇게 마음먹으면 어쩐지 힘이 빠지고 집 문 밖을 나서기 어려워진다. 다만, 일어나서 세수를 좀 해볼까, 옷을 좀 갈아입어볼까, 하니도 외출복으로 갈아 입혀볼까, 머리를 묶어줘 볼까, 가방을 좀 싸 볼까, 이렇게 되면 그 어려웠던 준빈가 끝나고 이제 신발 신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행동이 다른 행동을 연결해준다. 

우반을 타고 가는 동안에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아예 생각을 안 하는 편이다. 될 대로 되라지 뭐. 오늘은 Haus der Familie라는 곳에서 열리는 Babytreff를 가기 위해 나섰다. 12개월 미만의 아기들과의 만남 시간이다. 열린 모임이라 따로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참가비도 없다. 하지만 이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는지, 그냥 부모들끼리 만나는 건지, 진행자가 따로 있는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가는 것이다. 후기? 그런 거 없다.

 

(마음만) 전투 시작

Haus der Familie는 이미 두어 번 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건물 앞까지는 문제없이 찾아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부터 시작이다. 나의 빠른 눈 스캔으로, 카페에는 네다섯 명의 독일 엄마들이 아기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다. 나는 유모차를 끌고 들어가 어디에 유모차를 둬야 하나 잠시 고민한다. Babytreff는 어디서 하는 거지... 잠깐 동공 지진이 온다. 일단 유모차 주차 공간에 유모차를 두고 하니의 패딩을 벗기고 하니를 업고 가방을 메고 주문대로 간다. 음료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한 독일 엄마가 있기에 묻는다. "Babytreff는 이미 시작했나요?" 오늘 진행자가 아파서 취소되었단다. 아, 진행자가 있는 모임이구나. 나는 그럼 어쩌지. 나는 어쨌든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가 나올 동안 다시 공간을 넓게 훑어본다. 어디에 앉아볼까. 오른쪽 한 켠에는 하니 또래로 보이는 아기 엄마 3명이 앉아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저기 앉아도 되냐고 하면서 앉아볼까? 잠시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 보았지만 이내 쑥스러움이 밀려왔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 계산대 바로 앞 빈 테이블? 저기도 좀 그런데... 커피가 다 나올 때까지 어디에 앉아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하니를 안고 커피잔을 한 손에 들고 어깨에 가방을 걸친 채 카페 안 놀이공간 앞에 자리를 잡았다. 놀이공간 안에는 아직 아기들이 없었다. 일단은 혼자 앉기로 했다. 얼굴에는 함박미소를 지은 채로.

하니를 잠시 혼자 놀이공간에 내려둬 봤지만 좀처럼 떨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하니를 다시 안고 몇 모금 커피를 홀짝이다가, 온 김에 아기들을 위한 유료 수업 등록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무실 운영시간은 마침 지금이다. 하니를 안고 사무실 앞까지 가봤다. 문을 두드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노크를 한다. 하니 월령에 맞는 수업을 찾아 등록까지 잘 마쳤다. 문 밖을 나서는데 무척이나 뿌듯하다.

카페 한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Spielecke. 아기들을 이곳에 내려놓고 엄마들끼리 커피를 마시라는 취지이지만 결코 아기들이 혼자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 포함한 독일 엄마들 모두 이 공간 옆에 쪼그리고 앉아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물꼬는 결국 아기가 튼다

아까 저쪽에서 대화를 나누던 독일 엄마들이 아기들을 데리고 놀이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도 슬그머니 그 아기들 옆에 하니를 내려놓았다. 아기들은 자연스럽게 섞여 기어 다니고 물건을 집어 빨고 일어 서고 앉고 하더니, 엄마들 사이에서도 대화의 물꼬가 살짝 트이기 시작했다. 첫 질문은 언제나처럼 '아기 너무 귀엽다. 몇 개월이야?' ..... 슬그머니 조금씩 대화를 시작한다. 내친김에 궁금한 것도 물어본다. 내 어버버 한 독일어도 끈기 있게 잘 들어주고 성실히 대답해준다. 

얘기를 나누고 보니 이제는 다들 꽤 친근하게 느껴졌다.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진다거나 어렵게 생각되지 않았다. 저 엄마들도 나처럼 집에만 있기 어려워 아기를 데리고 나온 똑같은 사람이다. 함께 앉아서 대화를 나눈 20-30분간은 동질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제 매주 수요일 오전은 여길 와야겠다. 다음 주에 보자는 인사와 함께 건물 밖을 나오면서, 오늘도 아주 뿌듯하고 충분한, 새로운 자극이었노라 스스로를 다독거려본다. 이 뿌듯함은 다음 시도 앞에서 꽤 희미해지겠지만 어쨌든 내일도 나는 하니와 함께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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