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아기와 둘이서 장거리 비행을 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 둘 다) 몹시도 몹시도 괴롭고 힘든 것이었다....

눕혀 놓으면 다시 깨고 자꾸만 말똥말똥 눈을 뜨는 하니가 야속해서 비행기 안 좁은 복도에 서서 나는 울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이었다. 하니는 한참 전부터 깨서 다시 잠들지 않았다. 맨 처음에는 이륙하자마자 하니가 잠을 자 주어 나는 퍽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기내식도 우아하게 먹었다. 내 옆에는 친정엄마와 함께 앉은, 10개월 딸을 데리고 있는 엄마가 꽤 괴롭게 아이를 달래며 식사도 못하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혼자서 아이를 케어하는 사람 치고 기내식까지 앉아 먹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했었다.

이륙하자마자 바시넷에 누워 자는 그녀.

저녁 7시부터 자기 시작한 하니는 10시가 되자 울면서 잠에서 깨었다. 나는 달래주면 다시 잠들 거라고 생각했다. 열심히도 무릎을 굽혀가며 안아 들고 달래 보았다. 그 후로 하니는 3시간 동안 잠에 들지 않았다. 그 3시간은 내게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하니는 계속 보채는데 누구에게 맞기지도 못하고 나는 팔이 아프고... 하니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안고 있었던 것이 처음이다. 집에 있었으면 남편이라도 번갈아 안아주었을 텐데... 아기와 단 둘이 비행기에 탔던 그날. 그날이 하니 태어나고, 정말 눈물 쏙 빠지게 가장 힘든 날이었다.

내가 가지고 탄 짐은 무거웠다. 슬링은 불편했고 비행기 안에서 아기를 혼자 보는 것은 정말이지 힘들고 괴로웠다. 아기띠를 매고 화장실에 갔다. 불도 다 꺼서 어두운데 하니는 마치 낮인것 처럼 활발했다. 좁은 복도에서 아기띠를 매고 서성거리며 진심으로 독일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힘든데 가는 게 정말 잘한 일이었을까?

친오빠의 결혼식에 참석하는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아직 부모님께서 독일에서 태어난 하니를 보지 못하셨기에 첫 손주를 안겨드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남편은 논문학기가 시작되어 실험 일정 때문에 함께 가지 못했다. 나는 독일에 남아있어야 했을까? 

 

더 힘든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인천공항-나주 가기

우여곡절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나는 유모차에 하니를 태우고 28인치 케리어, 20인치 케리어를 양 손에 끌면서 출국장을 나섰다. 입출국 심사는 사실 아주 편했다. 성인 혼자 24개월 미만의 아이를 동반하고 비행할 경우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기다리는 줄 한 번 없이 들어왔고, 또 나갔다.

문제는 인천공항에 내려 친정집까지 가는 일이었다. 친정은 나주. 아버지께서 차로 먼 길 마중을 나와 주셨지만 가는 길이 더 험했다. 하니는 심하게 낯을 가리기 시작해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만 들어도 악을 쓰고 울었다. 친정엄마는 심하게 낯을 가리는 하니를 보며, 엄마가 어떻게 키워서 애가 이러냐는 둥, 우니까 밉다는 둥, 더워서 그렇다 옷을 벗겨라 마라, 발작하며 우는 하니를 뺏어 안아올라 마구 등을 때리는 등... 나는 잠도 못 자고 몸은 피곤하고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발작하며 우는 하니에, 이제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친정엄마까지 달래야 했다. "낯을 가려서 그래 엄마. 친해지면 괜찮아질 거야."

울다 지쳐 잠든 너. 엄마가 너무... 미안해.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빠르게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니는 첫날 장거리 비행이 퍽이나 피곤했는지 통잠을 잤고 다음날 아침 기분이 좋아져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오후가 되니 다시 낯가림이 시작되어 할머니만 보면 울었지만, 낯가림은 이틀을 넘기지 않았다. 시차 적응을 한답시고 새벽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10일간 이어졌다. 시차 적응에는 1시간에 1일 정도 걸린다더니, 그 말이 아기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듯하다. 

하니는 태어나고 쭉 아기침대에서만 자다가 나와 같은 공간에서 누워 자는 것은 처음이었다. 독일은 바닥에서 누워 자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 침대를 쓴다. 하니는 슐라프삭(입는 이불)을 입고 자면 움직임이 둔하기도 하고 아기침대 안에 있기 때문에 가만히 누워 잤지만, 한국에서 나와 잘 때면 새벽에 깨면 온 방을 기어 다녔다. 하니는 새벽에 깨면 포복자세로 내게 다가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 손길이 너무 거칠어 꽤나 아팠지만, 헥헥거리며 재밌게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하니가 그 새벽에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할머니 집에서의 하루하루가 다 적응될 즈음, 우리는 돌아와야 했다.

독일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인지 하니도 다른 행동을 보여줬다. 뭔가 활발하고 역동적이고 기운이 좋았다. 하니의 발달과정에 따른 변화일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을 같이 봐주고 함께 기뻐해 주는 가족이 있다니, 기쁨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것에서 감사함을 느낀다. 하니가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어서. 힘든 비행이었지만, 4주의 시간이 귀하고 감사하다. 

+ 덧붙여서

함께 비행기를 탔던 승객들도 못지않게 힘들었을 것이라는 댓글을 보고 남긴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오고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주쳤던 몇몇 승객들은 아기에게 환하게 웃으며 미소를 보내주었고 그 미소가 아기 엄마에게는 힘내라는 격려로, 응원으로 다가왔다. 하니만큼 울지 않고 잘 있어주는 아기는 처음 봤다면서, 한마디씩 건내주는 말들은, 아기가 시끄러워 승객들에게 불편을 줄까 전전긍긍하며 매시간 촉각을 곤두세우는 내 마음의 부채감을 위로해주는 큰 힘이었다. 

승객들의 미담을 밝히자면 끝이 없다. 하니가 바시넷에 잠시 앉아 이유식 먹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내 뒤 대각선에 앉아 있는 한 젊은 남자 승객분은 (나는 그분이 보이지 않지만 하니는 바로 보인다.) 하니와 눈을 맞추며 아무래도 코믹한 표정을 지어주시는지 하니가 몇번이고 활짝 웃었다. 어떤 분은, 자기 딸도 하니 또래라며 내게 다가와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고 가셨다. 어떤 분은 화장실 줄을 기다리며 말없이 하니의 눈을 피하지 않고 웃으며 맞춰주셨다.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는 말을 정말 실감하는 경험이었다. 

비행기에 탔던 순간 눈물이 쏙 빠지게 힘들었던 것은, 하니가 그 시간동안 미친듯이 울어서가 아니고, 다른 승객들에게 혹시나 누가 될까봐 아기를 안은채로 비행 내내 거의 서서 있었기 때문이다. 10시반 반, 12시간 반 비행 중 8-9시간은 아기띠를 매고 화장실 복도에 서 있었다. 하니는 다행히도 시끄럽게 우는 아기는 아니다. 다만 작게 칭얼거리는 소리도 다른 승객들의 수면에 방해가 될까봐 (실제로 한국-독일 비행기에서는 내 바로 옆에 일반 승객이 앉아 계셨다) 하니가 잠을 자지 않는 이상 자리에 앉아있지 않으려 했다. 아기를 데리고 타는 부모는 정말이지 어쩔수가 없다. 전전긍긍하게 된다. 안절부절하는 채로 아이의 소리가 세어나가지 않도록 단속할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국가 이동을 해야만 하는 아기들의 경우는 그야말로 빚진 마음으로 비행을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7개월 된 아기만 데리고 혼자 독일-한국 비행을 하며,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말없이 지지해준 승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훗날 마주치게 될 나같은 엄마-아기에게 한번쯤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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