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사는 6개월 한국 아기의 이유식 계획

독일에서 태어난 하니, 이유식은 어떻게 할까?

하니가 2개월에서 3개월쯤 되었을 때 독일에 사는 지인들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이유식은 어떻게 할 거야? 한국식으로? 아니면 독일식?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일단 만들어 먹이는 것을 선택했다. 누가 준 이유식 책 한 권을 교과서로 삼아 애호박-감자-브로콜리-양배추-단호박-고구마같은 야채나 바나나, 사과 같은 과일 종류 하나씩을 골라 알나투라Alnatura에서 산 자스민 쌀로 쌀미음을 만들어 먹였다. 

내 자식을 위한 요리는 보람도 있고 의욕도 넘쳤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전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뭔가를 만들었는데 아기가 그걸 한입 한입 맛있게 받아먹어 주는 경험은 그 흔한 옛날 말처럼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며 먹기 전부터 퍽이나 설레어지는 일이었다.

중기 이유식으로 가는 6개월. 이제 고기를 넣은 이유식을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다. 나는 슬슬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독일 엄마들은 이유식을 어떻게 할까? 

그때까지만 해도 그 흔한 마트와 dm에 널리고 널린 병 이유식과는 나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한국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밥이니까. 이게 내가 독일 땅에 살면서도 이유식을 해 먹인 가장 큰 이유였다. 

 

6개월 아기의 독일식 이유식 계획

독일에서도 엄마들은 소위 말하는 맘 카페 같은 곳에 질문을 하고 댓글을 확인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나는 "6 Monate Baby Essensplan(6개월 아기 식사 계획)"이나 "6 Monate Baby Ernährungsplan(6개월 아기 영양 계획)"같은 키워드를 쓰고 검색을 해봤다. Forum 같은 데서 역시나 많은 글들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내가 찾아본 독일 6개월 아기의 이유식 계획표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07:00~09:00 분유 230ml (용량은 아기에 따라 다르다)

11:00~13:00 ein Menü Gläschen (메인 메뉴, 정식 같은 병 이유식 하나)

15:00~16:00 ein Gläschen Obst und Getreide (과일과 곡물이 들어간 병 이유식 하나) 혹은 분유

18:00~19:00 Guten Abend Brei (자기 전에 먹는 죽, 퓌레 같은 것)


이 계획표는 한국식과 매우 다르다. 일단 놀랄만한 부분이 한 끼에서 두 끼를 "오직 이유식으로만" 먹는다는 점이다.

보통 한국은 초기 이유식은 40~60ml, 중기 이유식은 80~100ml을 먹이며 이유식을 먹고 난 후 분유 보충을 꼭 해준다(고 책에 적혀있다). 9개월 이후 후기 이유식이 되어서야 100~120ml을 먹으며 이 역시도 이유식 후 분유 보충을 해준다.

모든 단계에 있어서 "하루 수유량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적혀 있는데... 독일의 일반적인 병 이유식 용기는 190g. 그걸 다 먹는 것도 놀랍거니와 그것만 먹인다니? 이제 이유식을 막 시작하는 아기들의 경우 부족한 부분은 분유로 보충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비교적 단기간 안에 병 이유식 하나로 끼니를 때운다니, 독일 아이들이 먹성이 좋은 건지 유난히 차분한 건지 참 신기할 노릇이다.

 


 

또 한 가지 한국식과 다른 점. 점심을 하루 중 가장 많이 먹고 식사 이후 후식도 있다.

아기가 막 일어났을 때 먹는 수유와 오전 수유는 분유로 하다가 점심때가 되면(11시에서 13시쯤) 우리나라로 치면 메인 메뉴와도 같은 묵직한 내용물이 들어간 병 이유식을 먹인다. 예를 들면 야채가 들어간 병 이유식 절반(90~120g)에 소고기나 닭고기만 들은 Zubereitung 병 이유식 절반(60g)을 섞어서 따뜻하게 덥혀 주는 식이다.

아니면 Menü라고 써져있고 소고기나 닭고기, 또는 연어가 들어가 있는 병 이유식 하나를 통째로 먹인다(190g). 거기에 소고기 흡수를 돕기 위해 과일 퓌레 반 병(60g) 정도를 같이 먹이기도 한다.

만들어 먹인다는 사람들도 이런 흐름을 따른다. 오전 1~2회는 분유 수유 / 점심은 만든 이유식 / 오후에 과일 퓌레 / 저녁에 Guten Abend Brei. 총수유량은 800~1000ml를 유지하라는 점은 한국과 비슷하다.

사실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독일 엄마들도 점심식사 한 끼만 만들어 먹이는 것으로 보인다. 저녁에 먹는 Guten Abend Brei는 시중에서 마치 분유처럼 가루로 판매되고 있어 이것도 시판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내 아기의 이유식 계획 찾기

독일식 이유식 계획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검색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어딜 가든 흔하게 볼 수 있는 병 이유식들이 갑자기 의미 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걸 먹이면 하니의 반응이 어떨까, 하니가 병 이유식을 좋아할까? 그래. 지금이다. 하니가 좋아하는 병 이유식 찾기를 시작했다. 

독일은 병 이유식의 천국이다.

독일의 병 이유식은 크게 다음의 카테고리로 나눠볼 수 있다.

1. 과일 100% 퓌레
2. 채소 간 것
3. Menü: 정식, 메인 요리 같은 느낌. 병에 Menü라고 쓰여있거나 채소와 함께 고기가 들어간 것을 메뉴라고 생각할 수 있다. 
4. Zubereitung: 소고기, 닭고기, 생선 이렇게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주로 채소 간 것에 섞어서 먹인다.
5. Früchteallerlei mit Vollkorn, Grieß: 과일에 곡물을 섞어놓은 것. 6개월 이상인 아기가 오후 3-4시쯤 끼니로 먹는다. 

 

나는 일단 종류별로 몇 개씩 구입해보았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랄까? 

100% Bio 과일이 함유된 과일퓨레 병. 소고기가 들어간 이유식을 먹인 후 철분 흡수를 위해 조금씩 주고 있다. 
채소 시리즈. 처음에는 뭣 모르고 채소만 떠 줬다가.... 하니의 극혐하는 표정을 보고 다 버렸다..^^....
점심메뉴. 맨 왼쪽에 Babydream에서 나온 단호박+밥+소고기가 들은 병 이유식 빼고 Hipp 메뉴는 전부 다 실패.^_^.....
과일 퓨레와 곡물이 섞인 이런 종류는 언제나 잘 먹힌다. 곡물이 들어가 있어서 좀더 든든한 느낌. 

하니가 잘 못 먹는 것: 야채, 버터나 토마토가 들어간 병

하니의 호불호는 너무나도 확실했다. 쌀미음으로 이유식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하니는 다른 질감이나 향이 나는 것들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동안 내가 만든 이유식을 잘 받아먹어 준 하니에게 새삼 고마울 정도로 하니는 싫어하는 것 앞에서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아기였다. 분명 배가 고픈데도 절대로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는다. 가까스로 조금 입에 넣어주면 절대 삼키지 않는다. 뱉거나 구역질을 한다.

채소류 중 시금치와 감자가 섞인 Spinatgemüse in Kartoffeln 나 토마토 스파게티 소스 비슷한 맛이 나는 Spaghetti Bolognese, 당근과 옥수수, 소고기가 들어간 Karotten mit Mais & Kalb,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알래스카 연어(?)가 들어간 Hipp의 Mini-Pasta mit Alaska-Seelachsfilet & Buttergemüse.... ^_^ 하.. 이건 정말 극혐이었다. 극혐. 세상에 도대체 이걸 왜 자기에게 주냐는 표정... 결국 한입 먹고 전부 다 버렸다. 

 

잘 먹는 것: 과일 퓌레, 소고기 병과 단호박이 들어간 제품들

나머지 과일류는 대체로 잘 먹는 편이었다. 딸기가 들어간 것은 새콤한지 입이 잘 열리지 않았던 것을 빼고. 지금은 안전하게 Apfel pur(사과 100%)나 바나나와 사과가 들어간 병을 선택해서 점심식사 후에 디저트로 40~60ml 떠먹여 주고 있다.

고기만 들어간 Zubereitung 병은 채소 이유식과 섞어서 주거나 내가 지은 쌀미음에 섞어 줘 봤는데, 잘 받아먹었다. 소고기 이유식 병을 열어 직접 맛을 보면 의외로 고소한 소고기 맛이 잘 살아있다. 내가 직접 소고기를 갈아서 이유식을 만들 때보다 입자가 훨씬 곱고 부드러웠다. 

단호박이 들어간 것도 잘 먹어주었다. Rossmann의 자체상품인 Babydream에서 나온 감자가 들어간 단호박(Kürbis mit Kartoffeln)은 Öko-Test에서 가장 우수함Sehr gut을 받은 제품이라 더 안심하고 먹일 수 있어서 좋다.

사실 아기에게 먹이는 거의 모든 병 이유식 제품은 독일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여 생산 유통되고 있는 제품들이라 할 수 있다. 제품에 Bio 100% Apfel(과일)이라고 적혀있다면 정말 100% 유기농 사과로 내용물이 구성되어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이것도 싫어? 저것도 싫어? 그럼 이건? 하면서 병 네 개를 깠다가 전부 다 실패.^_^

침이 묻지 않고 따뜻하게 덥혀지지 않은 내용물은 그대로 냉장고에 넣고 이틀 정도 더 보관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병을 열면 일단 덜어서 먹이고 나머지는 곧바로 냉장 보관하고 있다.

자기 전에 먹는 Guten Abend Brei 시리즈. 왼쪽 Grieß-Banane를 시도했고 오른쪽 두개는 앞으로 먹여볼 것들.

Guten Abend Brei는 무리 없이 잘 먹는 편이었다. 질감만 죽 질감이지 사실상 분유라고 봐도 무관할 것 같다. 대신에 평소 분유에 들어가는 물 양(210ml)보다 Brei에 들어가는 물 양(140ml)이 적기 때문에 끼니 사이사이에 물을 자주 먹여주는 게 필요하다.

 


 

독일 이유식의 특징 중 하나는, Rapsöl 유채 씨 기름을 끼니마다 조금씩 첨가하여 먹인다는 점이다. dm에서 판매하길래 이것도 같이 구매했다. 일부 메뉴 같은 병 이유식 안에는 이미 Rapsöl이 함유되어 있기도 하지만 채소나 고기를 섞어 먹이는 경우 추가로 넣어 먹이는 것 같았다. 독일 엄마들의 정보통에 따르면 소아과 의사들도 권고하는 사항이라니 Rapsöl이 아기들의 뇌 발달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내가 독일식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는 한 끼를 오로지 이유식으로만 먹인다는 점, 점심 식사 이후 후식으로 과일 퓌레를 먹인다는 점, 자기 전에 Guten Abend Brei를 먹인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완전 독일식인가 싶지만 점심 식사를 쌀미음 중심으로 야채와 고기를 첨가한다는 점에서 한 끼를 한식으로 먹인다고 보면 되겠다. 

 

하니의 절충형 이유식 계획

적당히 독일식을 참고하여 만든 하니의 절충형 이유식 계획은 이런 식으로 세워봤다.


05:00~06:00 압타밀 분유 230ml

09:00~10:00 내가 만든 쌀미음 80ml + 고기 병 이유식 60ml + 채소 병 이유식 40ml을 섞은 이유식(180ml)과 과일 디저트(60ml)

13:00~14:00 과일과 곡물이 들어간 이유식 병 절반(90ml)과 분유 170ml

17:00~18:00 Guten Abend Brei 185ml


하니의 컨디션따라 먹는 양은 다르다. 오늘 같은 경우는 점심으로 이유식 180ml에 과일 퓌레 50ml를 모두 먹었지만 그다음 텀 수유 때는 분유 130ml만 먹었다. 일어나는 시간이 어떤 날은 새벽 4시 반, 어떤 날은 5시 반, 달라서 전체 끼니가 네 끼가 됐다가 다섯 끼가 되기도 한다. 그때그때 다르다.

자기 전에 먹는 Guten Abend Brei도 만약 하니가 너무 피곤해하거나 졸려한다면 Brei를 주지 않고 분유 수유로 대체하고 있다. 적당히 유연하게 바꿔가며 하루하루 맞춰가는 중이다.

 

20% 세일할 때 사놓은 hipp 고기 병 이유식과 이번주 시도할 다양한 병 이유식. 

엄마가 손수 해주는 이유식이야말로 아기 몸에도 좋고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겨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아기를 위해 엄마가 먹을 것을 준비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병 이유식이 대중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독일. 나같은 초보 엄마들이 무리없이 아기들을 먹일 수 있도록 가이드가 잘 되어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의 이유식은 엄마가 직접 만들여 먹이는 것이 '기본원칙'이지만 이곳에서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보인다. 

독일의 잘 갖춰진 시스템은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내 식 대로 식사를 챙겨주기로 마음 먹었다. 현재도 조금씩 보완하고 바꿔가며 우리의 절충형 이유식 계획 찾기는 계속되고 있다. 

  • 2019.11.12 15:25

    비밀댓글입니다

  • 2019.11.27 14:45

    비밀댓글입니다

    • 밤익는냄새 2019.12.18 09:10 신고

      이 댓글을 확인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남겨보자면 한국 다녀와서 좀 정신이 없었어 ㅠㅠ 독일 오고서도 뭔가, 약간 흩어진 마음을(?) 챙기는데 한달이나 걸린 것 같아. 암튼 신경써줘서 고맙네요 독자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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