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오늘도 운동을 한다

저녁밥을 먹이는 것 부터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하니는 평소 좋아하는 연어가 들어간 밥을 왠일인지 잘 먹지 않았다.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가 두배 이상 들어간다. 하니는 자꾸 손사래를 치고 나는 한 번이라도 먹이기 위해 숟가락을 들이밀고.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하다 밥은 사방으로 튀고. 인내심은 바닥을 들어낸다.

남편이 후반부를 맡아 양치를 시켜주는 동안 나는 부엌으로 숨어 들어가 설거지를 하는 명목으로 한숨을 돌렸다. 정말이지 감정적으로 힘에 부칠 때는 자리를 뜨고만 싶어진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내가 편했던 장소, 내가 편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만 진다. 나는 감정 탈진 상태가 되어 설거지를 하며 부정적인 감정 안에 머물러 있었다.

하니를 재우는 것은 요새 나의 몫이 되었다. 하니가 돌이 지나고나서 엄마를 찾는 욕구가 전과는 비할 수 없이 커져버렸다. 남편이 재우는 날에는 유독 잠드는 시간이 오래 걸려 당분간은 내가 도맡아 재우기로 했다. 감정 소모가 심했던 오늘 밤, 하니는 쉽게 잠에 들지 못했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30분이 넘어가고 나의 한숨도 짙어질 때쯤 남편이 조용히 들어오더니 저녁을 먹으라며 나를 나가게 해주었다.

테이블 위에는 삶은 계란 두 개가 올려진 접시가 있었다. 운동할 때 먹으라고 큰 컵에 물도 한 가득 담아져 있었다. 체중감량을 위해 저녁 한 끼 삶은 계란이나 바나나같은 것을 먹으며 운동을 한 지 벌써 한달이 넘어간다. 배는 살짝 고팠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삶은 계란을 두고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잘 먹을때는 한없이 좋은데...

 

운동을 시작하기 전, 내 감정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나는 피곤했고, 지쳤다. 하니를 재우는게 싫었고, 엄마로서 살아야 하는게 힘에 부쳤다. 감정은 끝없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밥도 먹기 싫고 운동도 하기 싫고 누워만 있고 싶고. 할수만 있다면 다 무르고 싶은 그런 옅은 절망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남편이 차려준 컵에 담긴 물을 한모금 마셨다. 그래, 뭐라도 해야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운동을 하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습관처럼 손목과 발목을 돌리며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몸을 움직여 근육을 사용하는 동안만큼은 잡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한 세트를 마무리하고 다른 동작을 진행한다. 심장이 빨리 뛴다. 근육의 뻐근함과 통증을 느끼면서, 그래도 하니가 밤잠을 자니 내가 이렇게 운동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잠을 자주는 하니가 고마워지면서, 엄마로 살면서 하루 동안 단 한 시간이라도 스스로 몸을 보살피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 퍽이나 잘한 선택이라 느낀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한다. 양치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나오면 무거운 몸에 비해 내 마음은 하루 중 가장 가벼운 상태가 된다. 나는 이제 뭐든지 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건 뭐든지 할 수 있다. 짧지만, 잠들기 전 한 시간 반의 시간이 주워졌고, 이 시간만큼은 오롯이 내 자유다. 운동이 끝나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나는 소박하지만 강렬한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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