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영, <행복의 충격>(2012) 충격적인 태양이여 나에게도 오라

알베르 까뮈 전집을 포함해 프랑스 문학 번역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김화영 번역가의 산문집, <행복의 충격>은 <책은 도끼다>에서 지중해성 사고방식이 잘 녹아져있는 책으로 선정된 책이다. 그럴만 한 것이 저자는 젊은날을 엑상프로방스에 오랜시간 체류하면서 그 시절 직접적으로 다가왔던 충격적인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직접 겪고, 느꼈던 타국에서의 이질감이 어떤 것일지. 캄보디아의 뜨거운 태양하고는 다르겠지만, 아무튼 읽는 내내 나는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볕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들이 참으로 '떠난다'는 일은 쉽지 않다. 떠나는 방법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다. 수없이 떠나본 사람에게도 모든 '떠남'은 항상 최초의 경험이다. 떠나는 방법은 자기 스스로에게도 교육할 수 없는 것이다."

1970년대 해외유학이라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때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액상 프로방스로 유학길에 오른 저자. 그 당시의 그에게 '떠난다'는 일은 왠만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저자가 말한 것 처럼 '최초의 경험'이었겠지.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떠남은 항상 낯설다. 매 순간 떠난다는 것은 처음 겪는 경험인 것 같다.


"요컨대 나는 갑자기 병풍그림이나 외국의 원색판 사진첩이나 화집 같은 곳에 그려진 행복한 풍경 속으로 나 자신도 모르게 들어오게 된 틈입자만 같아서 안절부절못하였다. 수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나는, 그때의 얄궂은 저항감이나 불안정감은 아마도 내가 최초로 받은 '행복의 충격'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가 느꼈을 저항감과 불안정감이 어땠을까. 캄보디아에 처음 도착한 늦은 저녁. 구두상으로 계약한 빌라로 가기 위해 빌라 주인의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문자들, 어둡고 음침해보이는 거리를 보면서 알수없는 한숨이 나왔었다. 한국에서 싸들고 온 짐보다 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캄보디아에 도착하고 나서 최초로 기억하는 충격이겠다. 행복의 충격은 아니고, 낯설음에서 오는 충격.


"문명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향하여, 어떤 머나먼 목적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설득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사는 것이며, 삶은 우리가 매일같이 항상 하고 있는 일이며, 하루의 매 시각 우리가 살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목적을 다 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날들은 과일과 같다. 우리들의 역할은 그 과일들을 먹는 일이다. 우리들 본성에 따라 부드럽게든 탐욕스럽게든 그 과일들을 먹는 일이다. 그 과일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섭취하여 우리의 정신적인 살을, 우리의 영혼을 만드는 일, 즉 사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그 밖의 어떤 목적도 없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말 처럼 우리가 태어난 목적에 따라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치가 지배적일 때가 있었다. 그에 걸맞게 나도 세계평화랄지 인류구원이랄지 거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내 삶을 헌신하겠노라 다짐하기도 했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자신감에 차있었고 패기가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항상 피곤했고 지쳐있었다. 어쩌면 뼈속부터 능력주의, 목적달성주의에 시달린 내 삶이 이 구절에서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매 시각 우리가 살기만 한다면 진정한 목적을 다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거창했던 목표의식은 잠시 내려놓고 (지금도 내려놓고 있는 중이다), 오늘 하루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 이곳의 햇볕은 조금 충격적으로 뜨겁긴 하지만, 은근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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