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중국식 룰렛> (2016) 불확실성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

역시 책은 종이넘어가는 맛에 읽나. 맨 전자책만 들여다 보다가 오랜만에 종이책을 만졌다. 한장씩 넘어가는 느낌이 새삼 좋다.

은희경, <중국식 룰렛>은 6편의 단편소설이 묶인 책이다. 각 편은 위스키, 수첩, 신발, 가방, 책, 음악을 모티브로 삼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 단편소설은 등장인물도 다르고 놓여진 환경도 다르지만 한가지 같은 흐름을 타고 있었다. 불확실성, 우연적인 사건, 연속되지 않은 일과 같은 것들. 그런데 그것을 불안으로 느끼지 않고 삶의 한 일부처럼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표제작 <중국식 룰렛>에서 위스키가 숙성될 때 증발되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게 인상적이다. 위스키가 더 향기로워지도록 숙성되는 동안 증발되는 2퍼센트의 양은 천사가 가져간다는 것.

"위스키는 숙성시키는 동안 매년 2퍼센트에서 3퍼센트 정도가 증발하죠. 그걸 '천사의 몫'이라고 불러요. (...) 천사들은 술을 가리지 않아요. 모든 술에서 공평하게 2퍼세늩를 마시죠. 사람의 인생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증발되는 게 있다면, 천사가 가져가는 2퍼센트 정도의 행운이 아닐까요. 그 2퍼센트의 증발 때문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군요."

앞 뒤 딱 자르고 부연설명 없이 그 장면만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소설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오고가는 대화에 미묘한 기류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상의 설명이랄지 부연적으로 보여주는 게 없다. 궁금한 것은 독자가 알아서 상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책은 스토리의 앞뒤를 상상하게 부추긴다. 반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이런 상상까지.

모든 경험은 선택에 영향을 준다. 모든 만남과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의 10년과 20년 혹은 그 이후, 이런 모든 경험으로 뜻밖의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곳을 향해 갈지도 모른다. 모든게 불확실하고 지나치게 우연적이지만 한가지 사실만 뚜렷하다. 나는 더 향기로워 질 거라는 것. 숙성이 될 것이라는 것. 작가의 말처럼, 더 좋아진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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