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생활+157] 매일매일 뇌에 줄긋기

1.

거금을 들여 새 기타를 사들고 캄보디아로 왔는데 그동안 아끼고 다뤄주지 못해 넥이 많이 휘었다. 연중 덥고 습한 기후 때문인지 지나치게 건조해서인지 원인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주기적으로 쳐주지 않았다는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5개월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동안 기타가 가방 밖으로 나온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이제서야 기타를 칠 정신이 들어 밖으로 꺼냈다는게 참 나조차도 황당하다.

기타를 꺼내 들고 찬찬히 살펴봤다. 뒷배가 볼록 나와있고 줄은 많이 뜬 상태다. 연주를 해보니 카랑카랑하고 쨍쨍한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서로에게 조금도 길들여지지 않았다. 무려 6개월이 지났는데도 함께한 시간이 지나치게 적어 어색하기 짝이없는 관계다. 휘어버린 넥이야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길들이기 작업은 바로 시작이다. 좋은 소리를 내는 것부터 할 작정이다. 

2.

나는 일하는 곳에서 그룹홈 중학생 여자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3월부터 지금까지 벌써 5개월이 넘었는데 실력은 제자리 걸음이다. 좀처럼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원인이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일주일에 2번, 물론 매주 지켜지긴 어려웠기 때문에 2주에 한두번 레슨했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을까? 장기방학에 돌입하고 난 후 매일 한시간씩 피아노 레슨을 하는 요즘, 그동안 미적지근한 제자리 걸음의 원인을 단번에 알아차리게 됐다. 바로 꾸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가누지도 못했던 캄보디아 중학생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매번 생각하는건데 뇌에 제대로 줄 그으려면 반복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것도 자주, 매일매일이면 더 좋고.

하루 날을 정해 연습을 몰아서 한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많이 흐르면 막히던 부분은 여전히 막힌다. 한마디로 효과가 약하다. 반면에 자주, 매일매일 어려운 부분을 시도해보고 반복하면 이건 먹힌다. 내가 가르치는 애는 불과 방학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양손 연주를 하다가 갑자기 오른손으로 쳐야할 것을 왼손으로 치고 왼손으로 쳐야할 것을 오른손으로 바꿔 치는 기상한 모습이 아주 자주 나타났었다. 뇌가 익숙하지 않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혼동이 온 것이다. 가뭄에 콩나듯 뜨문뜨문 레슨으로 나아지는 건 전혀 없었다. 그러던 이 아이가 매일매일 레슨을 받게 되는 상황이 오자 뇌가 즉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안됐던 것이 오늘은 되는 놀라운 일이 나타났다. 이제 양손을 같이 쓰는데 거부반응은 없다. 어려운 박자를 따라잡기도 한다. 오른손과 왼손을 혼동했던 모습은 이제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이 아이를 가르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희망이자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매일매일 그것을 붙잡고 막히던 것과 부딪힌다면 결국에는 돌파한다. 매일매일 반복하면, 난이도를 점점 올려 부딪히고 시도하면 끝내 힘이 생기게 된다. 일주일에 한번이나 한달에 두어번은 뇌 줄긋기에 별 의미가 없다. 나는 매일매일 뭘 하면 좋을까? 어떤 것을 잘해보고 싶을까 생각하다가 매일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아주 어렵지만 잘 해보고 싶은, 어떤 로망 같은 것이 있다. 매일매일 뇌에 줄을 긋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지. 일단은 남은 시간동안 나 스스로 실험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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