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자전거 출퇴근 5번째]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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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는 자전거 체인 위에서 명멸한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처럼 외롭고 새롭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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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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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자전거 여행1(김훈 저) 프롤로그 중에서


매일 책을 읽는 홍이가 이번에는 자전거 여행1(김훈 저)를 e-book으로 샀다. 한국에 있을 때 읽고 싶은 책 목록에 기록만 해두었는데 이번에 홍이 덕분에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한 사실을 지시하는 문장들이 너무 아름답다며 흥분해하는 홍이가 읽어주는 책 내용을 듣고 있으니 순간 책에 빠져들어간 기분이었다. 똑같이 자전거를 탔지만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표현들을 들으며 그저 감동만 할 뿐이었다. 언젠간 나도 저렇게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며 프롤로그의 일부를 서두에 기록한다.

자전거 출퇴근을 한지 5번째가 되었다. 짧은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일주일에 1~2번만 시도하고 있다. 지난 출퇴근 동안의 주요 관심사는 시속 (km/h) 이었다. 로드바이크가 아닌 MTB이기 때문에 빠른 속력을 유지하기에는 저항력이 크지만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에 억지를 부리는 것 같다. (왜 로드바이크를 사지 않았는지 요즘 조금씩 후회를 하고 있다.)

내가 유지할 수 있는 평균속력이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빠른 속력을 유지하며 달릴 수 있는지 기록에 연연해하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면서 누군지 모를(또는 기록을 세우고 싶은 나) 경쟁자와 레이스를 펼치는 듯하기도 했다.

첫 자전거 출퇴근을 시도했을 때는 평균 20 km/h로 달렸고 편도로 1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그 다음은 24~25 km/h로 1시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다음은 27~28 km/h에서 30 km/h까지 올라갔다. 이때는 door to door로 했을 때 막히는 구간 포함해서 1시간 15분 정도가 걸렸다. 타이어 압력에 따라 속도의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하고 맞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수월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타이어의 압력이 높고 맞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20 km/h보다는 24~25 km/h가, 24~25 km/h보다는 27~28 km/h의 속도가 힘이 덜 들어간다. 속력이 붙고 나면 오히려 빠를수록 유지하는 것이 쉽게 느껴졌다.

이번에도 25 km/h 정도로 무난하게 출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무릎에 약간의 무리가 간 듯하다. 페달을 밟을 때 다리에 힘이 많이 들지는 않았으나 무릎이 조금 부담되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무릎 보호대를 착용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타이어도 X-Road 용으로 조금 더 얇은 것으로 바꿀 것이다. 장거리다 보니 앞으로도 계속 타려면 MTB 용 타이어는 무리가 될 것 같다.

퇴근길에는 먹구름이 잔뜩 꼈다. 우기철이라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데 하늘은 울기 직전이다.

오른쪽 하늘은 맑은데 왼쪽 하늘은 비가 쏟아지고 있다.

비구름 때문인지 맞바람이 심하게 불어온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한 몸이 되어 힘들게 전진한다. 굵은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방수)가방 속에는 비옷이 있었지만 지금은 비를 맞아도 되겠다는 마음이었다. 멈추지 않고 천천히 맞바람을 거스르며 페달을 밟아나갔다. 왼편에서는 비를 퍼붓고 있었지만 오른편에서는 태양이 나를 비추었다. 조금은 멀리서 퍼붓는 빗방울이 나에게까지 날아왔지만 거기까지였다.

뒤를 돌아봤더니 저 멀리 지나온 길에는 비가 가득하다. 아직까지 자전거 출퇴근 길에 비를 맞은 적은 없다. 그러나 남은 우기 동안 기회는 많다. 서운하지 않게 비는 매일같이 오고 있다.

많은 분들이 자전거 출퇴근을 걱정해준다. 거리도 거리지만 차들이 과속과 역주행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도로는 잘되어 있다. (캄보디아라서 흙길이 아닐까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도로는 2차선으로 되어있으며 양옆에는 오토바이 도로가 각각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갓길이 있다. 나는 주로 갓길로만 다니기 때문에 차선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다. 그래도 사고는 내가 내는 것이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에 긴장을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 한 번 출퇴근을 하고 나면 약 2,200 cal를 소모한다. 6,000 ~ 7,000 cal를 소모하면 1 kg 이 빠진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지금까지 550 km를 탔고, 이는 약 18,800 cal 정도가 된다. 내 옆구리 살이 조금 빠진 것을 보면 이는 어느 정도 증명된다고 볼 수 있다.

자전거 여행1(김훈 저)의 프롤로그 내용을 인용해서 이야기해보자면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무렵에 2,200 cal를 소모하고 자전거는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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