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시간, 뎅기열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면서 느낀 것들

캄보디아의 어느 못된 모기가 옮긴 뎅기열로 요며칠간 박군이 로얄프놈펜병원에 입원해있는 중이다. 처음 증상이 시작됐던 목요일부터 주일인 오늘까지 꼬박 4일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남편을 간호하기 위해 껌딱지처럼 붙어있게 됐다. 내일 퇴원하니까 총 120시간이다. 생각해보면 연애 6년과 결혼 1년 반, 합해서 7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정도로 오랜시간 같이 한번도 떨어지지 않고, 하루종일, 다른 사람도 만나지 않은채로 (물론 중간에 병문안 와주신 분들도 계셨지만) 쭉 같이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이번이 처음이다. 아니 난생 처음이다.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첫째날 저녁에 나는 거의 잠을 못이뤘다. 뎅기열 진단을 받은 남편은 해열제를 맞아도 몇시간이면 금새 고열이 올랐고 계속 끙끙 앓기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서 어쩔줄을 몰라했고 불안함에 떨었다. 이 상태의 고열이 지속되면 몸의 어느 한 부분이 고장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뜨거웠다. 눈을 붙이려고 하면 끙끙대는 남편의 신음소리에 잠이 저절로 달아났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안타까운 심경이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둘째, 셋째날 나는 정말 심각하게 잘 잔 것이다. 남편이 식은땀으로 시트를 흠뻑 물들이며 이번엔 저체온으로 고생중인데 (뎅기열은 체온이 오락가락하게 한다) 보호자인 사람은 소파에 누워 쿨쿨 꿀잠을 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그 당황스러울 정도의 상쾌함이란.. 조금씩 남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젯밤엔 심지어 남편이 내 도움이 필요한데 내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지를 못했다고 한다. 내쪽으로 기침을 하거나 앓는 소리를 했더니, 내가 자세를 바꿔 등지고 누웠다고 한다. 잘 잤냐고 묻는 남편의 질문이 너무 민망하다. 너무도 잘 자버렸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 보살펴야 겠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만큼 내 몸이 안따라준다. 평상복을 벗기고 환자가운으로 입혀줄 때도 그랬다. 남편은 왼손 손등에 링겔을 맞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위엔 손만 대도 아픈 상태인데, 난 조심해야할 손을 먼저 살피지 않고 환자복을 입히다가 남편의 왼쪽 손을 무자비하게 꺾어 버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불쌍한 우리 박군...

하나 더 있다. 뎅기열에 걸린 후 식욕을 잃어버린 남편.. 온몸의 장기가 음식을 거부해 죽 한술 뜨기도 힘겨웠다. 그게 삼일을 갔는데 그 옆에서 나는... 너무 잘먹었다. 때되면 꼬박꼬박 나와주는 식사에 감사하면서. 나올때마다 맛있게 비워냈다.

"내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그것이 보편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성경에서 권면하고 있는게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남편을 간호하는 것도 마치 "내몸"이 아픈 것처럼 정성을 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마치 내 손등이 아픈 것처럼, 내 머리가 아픈 것처럼, 내가 열에 허덕이는 것처럼 증상을 이해하고 고통을 공감해주기는 참 어렵다.

완전히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해주기 어렵다면 자주 물어봐줄 수는 있지 않을까? 나는 비록 저녁시간만 되면 정신없이 곯아떨어지긴 했지만 자주 남편에게 이렇게 물어봤던 것 같다. 오늘 기분은 어때? 오늘 몸 상태는 좀 어때? 어디가 가장 아픈것 같아? 얼마나 아픈 것 같아?와 같은 사소한 물음을.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한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사랑은 관심의 지속적인 표현이 아닐까. 솔직히말해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지 못할바에야, 대안으로 이렇게 해볼 수 있다. 나는 지금 당신의 아픔이 궁금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싶고, 또 자세히 알고싶다는 물음, 이 작은 관심의 표현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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