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31. 04:30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남편은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오늘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빨래하기. 하니는 도무지 혼자 있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9kg에 육박하는 아기를 한쪽 팔에 번쩍 안아들고 화장실에 있는 빨래감을 가져온다. 하니를 부엌 바닥에 내려놓는다. 요즘 하니는 점점 무거워져서 들거나 안고 있기가 힘들어져서 이제 차라리 언제든 바닥에 내려놓고, 바닥을 매일 닦기로 했다. 하니가 부엌 바닥에 앉아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옷가지를 세탁기 안에 쑤셔 넣는다. 문을 닫기 전, 더러워진 하니의 식탁의자보가 떠오른다. 입에 음식물이 있는 채로 벨트를 쪽쪽 빨아대는 바람에 온갖 음식물들로 벨트가 딱딱해졌다. 벨트 풀기가 영 옹삭한데.... 그래도 힘주어 어깨, 허리, 중앙의 각각의 벨트들을 빼서 작은 주머니에 넣고 세탁기 안에 쑤..
2020. 1. 29. 03:17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식사초대를 받아 지인의 집을 방문했는데 하니에게 이유식을 먹이다가 순간 하니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하니는 몸이 축 늘어지면서 내게 고개를 기대고 어딘가 아픈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열이 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체온은 정상이었다. 평소에 하니와 다른 모습이었다. 졸릴 때에 하니는 차라리 몸에 힘을 주며 우는 편이다. 그리고 1시간 전쯤 이미 낮잠을 자고 일어나 전혀 졸릴만한 타이밍이 아니었다. 하니는 언제고 이렇게 힘없이 고개를 내 품에 푹 기대지 않는다. 불안감이 몰려왔다. 고개를 푹 기댄 채로 고개의 방향을 이리저리 돌리며 손가락을 빨던 하니는 거의 눈을 감은 채로 인상을 쓰며 있다가 한참 뒤에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다시 활기차게 웃으며 잡고 일..
2020. 1. 14. 06:35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잘 노는 하니가 느닷없이 열이 났다. 콧물이나 기침 같은 감기 증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유독 축 쳐져 보였다. 하니가 평소와 다르게 뭔가 더 뜨끈뜨끈했다. 설마... 온도를 재보니 38.8도. 비접촉식 온도계로 이마를 대고 잰 거라 혹시 부정확한 수치일까 싶어 항문 온도로 다시 재보았다. 38.1도.... 숫자 올라가는 속도가 꽤 빨랐다. 간담이 서늘했다. 하니가 태어나고 열이 난 것은 처음이다. 초보 엄마는 심히 당황했다. 뭘 어떻게 해줘야 할까, 바로 약을 줘야 할까 조금 지켜봐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38도 가지고 병원은 안 되겠지. 여긴 독일이니까. 웬만큼 열이 나지 않고선 태연하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소아과 의사가 대부분인 이곳은 엄마들에게 악명이 높은 곳이다...
2020. 1. 9. 05:36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나도 새로운 시도는 늘 어렵다.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을 찾아보기는 하지만 막상 가기까지는 쉽지가 않다. 6-7개월까지는 쭉 괜찮았다. 하니가 누워있으면 나도 마음 놓고 이것저것 할 수도 있고, 같이 누워있기도 했다. 하지만 하니가 잡고 일어서고 엄청난 에너지로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집에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하니를 데리고 나가야 했다. 어디든 가야한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로 2주간의 긴 연휴가 끝이 나고 남편은 다시 학교와 알바가 반복되는 일상이 시작됐다. 고로 나의 독박 육아의 세계가 다시 열린 것이다. 오늘부터는 내 의지로 집 밖을 나서야 한다. 처음엔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자, 어디 독일 엄마들과 독일 아이들 좀 만나러 가볼까, 이렇게 마음먹으면 어쩐지 힘이 빠지고 집 문 밖을 ..
2019. 12. 18. 16:28 2017-2021년 독일/일상 이야기
2년 3개월이 지나 이제야 날아온 편지 이틀 전쯤 온 편지는 아무렇게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Betriebskosten/Nebenkostenabrechnung. 이름도 긴 이 단어는 번역하면 "관리비/집세 외 잡비 정산". 우리가 이 집에 살기 시작한 것이 2017년 9월부터인데 무려, 2년이 지나서야 2017년 9월, 10월, 11월 이렇게 3개월간의 비용이 정산되어 날아온 것이다. 금액도 터무니없고, 기간도 너무 옛날이라 뭔가 잘못되었겠지, 쓴 사람이 헷갈렸겠지 하고 책상 위에 펼친 채로 둔 편지를 오늘에야 진지하게 읽을 마음이 생겼다. 첫 장부터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거주자의 물 총 사용량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화장실과 주방의 물 계량기 사진을 찍어두었던 것이 ..
2019. 12. 14. 07:47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그것은 (우리 둘 다) 몹시도 몹시도 괴롭고 힘든 것이었다.... 눕혀 놓으면 다시 깨고 자꾸만 말똥말똥 눈을 뜨는 하니가 야속해서 비행기 안 좁은 복도에 서서 나는 울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이었다. 하니는 한참 전부터 깨서 다시 잠들지 않았다. 맨 처음에는 이륙하자마자 하니가 잠을 자 주어 나는 퍽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기내식도 우아하게 먹었다. 내 옆에는 친정엄마와 함께 앉은, 10개월 딸을 데리고 있는 엄마가 꽤 괴롭게 아이를 달래며 식사도 못하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혼자서 아이를 케어하는 사람 치고 기내식까지 앉아 먹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했었다. 저녁 7시부터 자기 시작한 하니는 10시가 되자 울면서 잠에서 깨었다. 나는 달래주면 다시 잠들 거라고 생각했다. 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