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8주:: 체코 프라하 태교여행

독일에서 체코까지 6시간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는 꽤 긴 편이다. 성탄절 전날부터 시작해서 보통 1월 첫째 주 까지 무려 2주 정도 넉넉한 기간이 있다. 우리 부부는 이때 뭘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뱃속 아기가 나오기 전 마지막 여행으로 생각하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자고 결심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프라하까지는 기차로 2시간 반, 버스로 3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편도에 6시간이라 꽤 먼 거리이긴 하지만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고 교통비나 숙박비도 다른 도시에 비해 꽤 저렴한 편이라 프라하로 목적지를 정하기로 했다.

반카드 25를 사용해서 프라하까지 1인 왕복 교통비는 50유로. 여행일 두 달 전쯤 DB 홈페이지를 이용해 예약했다. 숙소는 Hotel Theatrino 로 정했다. 비수기 때로 설정하고 검색해보니 하루 40유로 정도면 묵을 수 있는 것 같던데, 연 초로 일정을 검색해보니 1박에 75유로 정도였다. 꽤 비싸긴 하지만 독일 숙박비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독일은 어딜 가든 1박에 100유로는 거뜬히 잡아야 하니까. 프라하가 호텔이 저렴한 편인 것 같다.


프라하 성, 황금소로에서 본 예쁜 집. :) 겨울 분위기가 물씬 난다.

연초 프라하 구시가지의 분위기. 관광을 온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3박 4일, 먹고 걷고 먹는 여행

이번 여행의 컨셉은 먹거리 여행이다. 임신 28주의 몸으로 많은 곳을 다닐 수도 없고 그동안 먹기 어려웠던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을 먹어보자는 마음이 컸다. 내가 지내는 곳은 한인식당이 많지 않은데 프라하는 관광지라 꽤 다양한 곳이 있었다. 우리가 프라하에서 먹을 수 있는 끼니 수는 아침을 제외하고 다섯 끼. 꼭 가고 싶은 음식점은 수첩에 메뉴 가격과 함께 목록을 만들어 두기까지 했다.

그동안 누군가 뭐 먹고 싶은게 없냐고 물어보면 딱히 당기는 음식이 없다고 대답을 했었는데, 그 말들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막상 이런 선택지가 생기니 신이 나는 걸 보면. 한국에 있었으면 어려움 없이 먹을 수 있을 평범한 음식들이 해외에 나와 살다보니 가장 먹기 어려운 것이 된다. 

내가 프라하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먹었던건 다름아닌 순대국밥, 파닭, 연어초밥 같은 것들.... 짜장면과 탕수육을 파는 한국식 중국집이 있다고 해서 꼭 가보고 싶었지만 내부 수리중이라 이용할 수 없었다. Schade!! 대신 베트남 쌀국수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았다. 

최근에 오픈했다는 Soul Chicken. 정말 오랜만에 먹는 파닭이다 ㅠ_ㅠ감동

토모 레스토랑. 연어초밥과 내장탕(+순대추가)를 먹었는데, 연어초밥을 무척 좋아하는 나인데도 내장탕에 손길을 끊을 수가 없었다. 내장탕 완승. 국밥 최고!

지친 여독을 풀어주는 달콤한 케이크 한조각.


임산부의 체력은 순식간에 없어진다

임신 28주, 8개월의 몸으로 도시 여행은 조금 힘이 들긴 했다. 분명 처음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구시가지를 걷고 있었는데 체력이 금방 동나버린다. 왜 이렇게 순식간에 피로해지고 지치는지. 배도 금방 당기고 숨이 금방 차오른다. 아무리 천천히 걷는다고 하지만 남편과 보조를 맞추기가 어려워진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프라하는 도시 특성상 걸어다닐 일이 많다. 두번 째 날 밥집을 찾아 1.5km를 가로지어 걸은 적이 있는데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뻗어버리고 말았다. 마치 마라톤에 완주하는 사람처럼 결승점에 나를 간신히 밀어넣은 기분이다. 남편은 안쓰러운지 계속 나의 안부를 묻는다. 핸드폰을 켜서 얼마나 걸었나 걸음수를 확인해보니 오전에만 5km. 9천보를 걸었다.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

오전에 기운을 쏙 뺐더니 오후 2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늘이 다 끝나버린 기분이 든다. 오후 내내 카페에 앉아 핫초코를 마시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대충 휴식을 마무리하고 구시가지 쪽으로 걸음을 옮겨야 하는데 엉덩이를 뗄 엄두가 나지 않아 수첩에 글도 적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그야말로 폭설이 내렸던 프라하 성.

추운 날씨엔 굴뚝빵이 최고다. 겉에는 설탕, 안에는 초코로 쌓여있는 극강의 단맛!!


머리도 시원하게 단발로!

프라하에 한인미용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커트 예약을 해뒀다. 무려 1년 7개월동안 길러온 치렁치렁한 이 머리카락 애물단지를 어떻게 처리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여행 간김에 해치워버리기로 했다. 단숨에 싹뚝 잘린 머리를 보며 그동안의 체증이 다 내려가는 속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커트 가격은 850코루나로 34유로 선. 조금 비싸긴 하지만 그동안 참고 참으며 미용실을 안 갔던(못 갔던) 것과 앞으로 못 갈 것들을 다 합해 이 가격에 머리를 자르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벌써 임신 8개월차. 머리를 시원하게 깎고 사진을 찍어봤다. 배가 꽤 둥그렇게 나왔다. :)

다시 단발이 되고 나니 굉장히 가볍고 산뜻해진 느낌이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꽤 시간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너무 간편해졌다. 아기를 낳고 나면 당분간 머리를 자를 일도 없게 될테니 다음번 미용실에 갈 일은 한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밤의 프라하는 아름답다

프라하에 가면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들었는데, 과연 그러했다. 봐도봐도 아름다운 밤의 프라하. 어둠이 짙은 밤에 반짝이는 건물들과 거리의 풍경이 마치 동화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춥기도 하고 바람도 불지만 도시가 주는 낭만에 흠뻑 젖을 수 밖에 없다. 

멀리 보이는 프라하 성과 까를교.

바람이 매섭게 불지만 여행자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다. :)


태교여행이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쓰긴 했지만 여느 여행과 다를 것 없는 3박 4일간의 프라하 여행이었다. 뱃속의 아기와 함께 걸어다니느라 조금 무겁고 조금 천천히 걸어야 하는 여행이긴 했지만 뭔가 임산부 기분이 났다고나 할까. 그동안 집에만 주로 있다보니 내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자각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 도시 곳곳을 쏘다니면서 쉽게 지치는 체력과 함께 빵빵 차는 희망이의 발길질을 느끼면서 임산부 기분을 마음껏(?) 누리고 왔다. 다음번 여행은 언제가 될지... 다음 부터는 이제 세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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