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27. 04:55 2017-2021년 독일/일상 이야기
어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한적한 저녁. 남편과 함께 발코니로 나왔는데 건너편에 보이는 집의 지붕에 접시만한 달이 걸려있다. 아주 동그랗고 말갛게 노란 달이 손에 잡을 듯한 거리에 놓여있다. 그래, 이 정도면 뭔가 써 볼만 하겠어 하고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다가 무심코 다시 달을 쳐다봤는데 그 사이에 동그란 달이 지붕 끝에서 하늘 위로 올라섰다. 아주 짧은 순간, 달하고 지붕하고 멀어진 거다. 찰나는 왜 이렇게도 짧은 건지.눈으로는 현상을 목격하지만 그걸 글로 옮겨담기에는 쉽지 않다. 방금처럼 현상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글로는 옮겨담기 어렵고 그걸 묘사하기에는 글빨의 한계가 느껴진다. 볼 때는 쓱 보고 쓸 때는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아주 극히 일부를 옮기는 것과 같다. 내 식의 필터는 많..
2018. 6. 1. 07:06 2017-2021년 독일/일상 이야기
폭풍같이 감정이 요동 쳤던 2월에 내게 큰 힘이 되었던 책 속의 구절을 다시 펼쳐보았다. 6월의 첫날이 곧 시작된다.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내게 주어진 날들을 감사하면서 잘 살아봐야지. 지난주에 다녀온 튀빙겐. 아름답다. :) "슬픔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모습으로 눈 앞을 가로막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을. 결코 그 손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통은 치유될 수 있다. 고통은 통찰력을 심어 주고, 생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며, 우리를 재생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딱지가 벗겨져야 새살이 돋는다. -마크 마토우세크 아래는 모두 '도대체' 작가의 에서 기록한 내용..
2018. 5. 27. 17:59 2017-2021년 독일/일상 이야기
남편은 자연친화적인 사람이라 식물에 관심이 크다. 작년 독일 집으로 처음 들어온 그 다음날 가장 먼저 샀던 것은 이불도 아니고 그릇도 아닌 식물과 화분이다. 그렇게 들어온 식구들이 대파와 라벤더. 대파는 9월에 씨를 뿌려 길고 긴 겨울을 가녀린 줄기로 간신히 버티더니 봄을 맞아 하늘 위로 쭉쭉 뻗어나가고 있다. 라벤더도 겨울잠 자듯 웅크리고 겨울을 나다가 봄을 맞아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라벤더가 봄을 맞아 피워낸 보라색 꽃은 한동안 우리가 감상하다가 최근엔 남편이 몇개 꺾어 방 곳곳에 걸어두었다. 집이 보기 좋아졌다.쭉쭉 뻗어 나가는 독일 대파. 올 여름엔 뜯어먹을 수 있으리. 박군의 섬세한 터치가 느껴지는 말린 라벤더. 남편은 저렇게 늘어지는 화분을 갖고 싶다고 근 몇주간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결국엔..
2018. 5. 20. 17:18 2017-2021년 독일/일상 이야기
슈투트가르트의 5월 날씨는 오락가락하는 편이다. 한 2주는 줄곧 여름처럼 덥더니 지난주 부터는 계속 쌀쌀한 온도다. 한국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 여름이 시작되면 줄곧 내내 여름 여름 여름!!!!!! 이라면 독일은 여름처럼 덥다가도 비만 오면 기온이 뚝 떨어져 가을처럼 쌀쌀해진다. 덕분에 기온 확인하는 건 아침마다 하는 일과 중 하나이다. 여름인줄 알고 나갔다가 초가을 날씨를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볕이 좋은 어느 5월의 하늘 B2.1가 끝났다 독일어 B2.1과정을 마쳤다. 어학원을 다닌지도 벌써 5개월째다. 과정이 올라갈 수록 내용은 좀더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알아야 할 단어도 많고 표현의 범위도 넓다. 학원에서 배운것 외에 집에서 혼자 익혀야 할 부분이 더 많아진 느낌. 요즘에는 독독..
2018. 5. 7. 04:02 2017-2021년 독일/일상 이야기
남편과 산책을 나선 길이었다. 어느새 해가 길어져 저녁 8시가 되어도 아직 하늘이 파랗다. 우리는 와인밭 사이에 나 있는 길다란 오르막길을 걸었다. 중턱쯤 오르니 왼편으로 우리집이 보인다. 늘 거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오르막길에 서서 반대로 집을 바라본다. 꼭 액자 속 세계에 들어온 것 같다.4월 초에는 민들레로 길가가 노랗게 물들어있더니 이제 꽃은 어디론가 쏙 들어가버리고 민들레 홀씨가 지천에 널려있다. 포도밭 주변에도 홀씨로 바닥이 빼곡히 매워져있다. 나는 지나가다말고 홀씨대를 잡아 꺽어 입가로 가져왔다. 그리곤 후- 하고 양볼에 바람을 넣어 한 숨에 불어보았다. 밤의 어스름이 내려오는 푸른 하늘로 하얀 홀씨들이 흩뿌려진다. 그 가벼움이 너무 신비스러워 하나를 더 꺾었다. 이번엔 좀더 약하게 불어봤다..
2018. 4. 23. 04:04 2017-2021년 독일/일상 이야기
슈투트가르트의 날씨는 봄을 넘어 어느덧 여름에 이르고 있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은 푸르른 빛깔을 뿜어내고 있다. 나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는 이토록 강력한 온화함에 탄력을 받아 독일어 공부에 온 시간을 몰빵하며 나의 4월을 보내고 있다. 봄에 탄력을 받아 우리 식물 친구들이 하늘로 쭉쭉 뻗어나가는 중이다. B2과정이 시작되니 B1보다 말을 확실히 많이 시킨다. 별별 테마에 대해서 토론 아닌 토론을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테마가 주거 방식에 대한 거면, '네가 사는 곳은 어떻니?', '어떤 장점이 있니?',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니?' 이런 식이다. 선생님이 곧바로 나한테 질문하거나 옆사람과 얘기하거나 그룹을 지어 얘기하거나. 계속 말 말 말 말!B1때는 그나마 문법이나 독해, 듣기 분량이..